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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무인의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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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바둑은 수담(手談)으로 불린다. 바둑엔 반드시 상대가 존재한다. 수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읽고 상대의 승부 호흡을 느끼며 여기에 적절히 반응한다. 바둑은 자못 정치적인 게임이다.

그러나 바둑은 역설적으로 눈앞의 상대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반전무인(盤前無人)의 자세를 최고의 경지로 친다. 승부란 상대를 의식하는 그 순간 사(邪)가 끼어든다. 강자에겐 두려움을 느끼고 약자 앞에선 교만해진다. 이것이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반전무인이란 바둑판 앞에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호흡을 공유하면서도 그 상대를 깡그리 잊고 판에만 몰입한다는 뜻이다.

1992년 서봉수 9단은 응씨배 준결승전에서 조치훈 9단과 마주앉았다. 서봉수는 세 살 아래인 조치훈의 비상한 능력에 감복하여 그에게 바둑의 의문점을 묻는 데 평소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동시에 서봉수는 세계 대회 우승컵을 목숨을 바쳐서라도 갖고 싶었고 우승상금 40만 달러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데 우승의 길목에서 하늘 같은 상수 조치훈과 맞닥뜨리자 서봉수는 그만 혼란에 빠져버렸다.

3번기의 첫 판은 완패였다. 그날 밤 서봉수는 우승에 대한 갈망과 조치훈에 대한 좌절감에 신경이 망가져 밤새 배가 찢어질듯 아팠다. 그런데 긴 고통 끝에 대국장에 앉았을 때 서봉수는 신기하게도 회복기의 중환자가 창문으로 세상을 내다볼 때처럼 텅빈 마음을 느끼게 된다.

서봉수는 2국과 3국에서 일생일대의 기막힌 명국을 두어 2대 1로 조치훈이란 우상을 꺾어버린다. 조치훈이란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서봉수는 말한다. 반전무인의 승리였다. 그는 결승에서도 이겨 끝내 우승컵을 거머쥔다.

조치훈은 '석심(石心)'이란 글귀가 적힌 부채를 갖고 있었다. 높은 경지에 오르면 돌의 마음이 느껴진다. 겸손하게 나를 낮추면 돌의 소리(石音)도 들린다. 그러나 조치훈은 서봉수를 지우지 못했고 결국 그게 패인이 됐다.

오늘도 수많은 정치 지도자가 신문을 장식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대권주자로 알려진 인사들은 날카로운 언변으로 공격과 수비를 반복하며 벌써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애쓴다. 이들 중 누가 승자가 되어야 옳을까.

앞서 말한 반전무인의 이치에 따르면 상대방 자체를 잊어버리고 오직 나라 전체의 판세에 충실한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되어야 맞다. 무생물인 돌의 마음마저 헤아리려는 그 절실한 자세로 민초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그가 승자가 되는 게 순리다.

대권을 노리는 인물들이 적어도 하류가 아닌 고수의 범주에 속한다면 '지역'이나 '출신 학교' 등 오랜 세월 판세를 왜곡시켜 온 상습범은 그만 잊어야 맞다. 미움이나 적개심은 물론이고 애국심 같은 고상한 단어조차 형세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마땅하다. 현실의 역풍은 강해 보인다. 그래도 딱 한 번만이라도 이 역풍을 뚫고 승리를 거머쥐는 반전무인의 고수가 정치판에 나타났으면 좋겠다.

영향력과 신뢰도 조사에서 집권당이 하위로 밀렸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다가 자꾸만 밀리고 있다. 눈치 빠른 공무원과 집중력을 잃은 권력이 누군가에 놀아난듯 보이는 '유전 게이트'는 실소마저 머금게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기대가 없으면 홀가분한 법이다. 서봉수 9단처럼 창자를 찢는 듯한 통증과 함께 명국을 둘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다가오고 있는지 모른다.

참여정부에 아직 시간은 있다. 반전무인의 자세로 남은 세월을 전력투구한다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명국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박치문 바둑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