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급 회담 재개하려 권력핵심 3인 총출동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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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국무총리(왼쪽)가 지난 4일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앞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을 만났다. [사진공동취재단]

황병서 총정치국장 일행의 인천 방문은 파격이었다. 전례 없는 북한 총정치국장의 방문인데, 그를 수행한 인사도 권력 실세인 노동당의 최용해·김양건 비서였다. 남한 측 인사와의 면담은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됐다. 정부도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 접견이 무산된 자세한 배경 등에 대해 함구했다. 정부 설명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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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남북 대화채널 복원만 논의했나=황병서 총정치국장 일행은 정홍원 국무총리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등과 ▶티타임(19분) ▶오찬회담(1시간40분) ▶총리 면담(14분) 등 2시간13분간 만났다. 그러고도 결과물은 ‘10월 말~11월 초에 고위급(차관급) 접촉을 재개한다’는 것 하나였다. 배석한 김규현 안보실 1차장이 수석대표(북한은 원동연 당 부부장)를 맡고 있는 남북 당국 간 대화채널을 복원하는 논의만 하고 돌아갔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그간의 남북협상을 보면 고위급 회담 재개 문제 정도는 판문점을 통한 전화통지문으로도 논의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에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이번은 의제를 정해 회담하러 왔다기보다는 통 크게 남북이 이제 한번 가까이 가보자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더라도 양측 모두 총리 또는 장관급에 해당하는 고위 인사들이 만나 산적한 남북 현안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남북 모두 공개하지 않은 알맹이가 더 있지 않느냐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②북, 박근혜 대통령 만남 피했나=아시안게임을 위해 체류해 온 북한 측 관계자는 3일 평양으로부터 전달돼 온 고위 인사의 인천 방문 계획을 통일부에 통보하며 일정을 함께 전달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4일 오전 인천에 도착해 밤 10시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과 남측 당국자와의 만남만을 위해 왔다고 보기엔 대표단 면면이 너무 무게가 나갔다. 그래서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북한 특사조문단(단장 김기남 당 비서)이 당초 계획을 변경해 하루 더 체류하며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찾은 전례도 있다. 통일부 또한 북한 대표단의 호텔 객실을 예약해두는 등 하룻밤을 묵을 가능성에 대비했다. 그러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등이 은근히 청와대 면담을 권유했으나 황 총정치국장 등은 응하지 않았다. 4일 밤 북한 대표단이 돌아갔지만 5일자 노동신문 1면은 이들의 귀환 소식을 보도하지 않고 “남조선으로 출발했다”고만 전했다.

 ③갑작스러운 방문 맞나=북한 측의 급작스러운 방남 통보에 정부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수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사전 물밑접촉 같은 교감이 이뤄져 남한 방문이 준비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황병서 총정치국장 같은 고위 인사의 남한 방문이 돌발적으로 진행됐다는 건 믿기지 않는 데다 개천절 연휴 첫날 비상이 걸렸는데도 고위 인사 소집이나 관련 준비작업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된 점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는 “현 정부에서 비밀접촉 같은 채널은 가동하지 않고 있다”고 부인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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