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차이 나는 차이나] 시진핑 언론 새판짜기 … 호랑이 잡는 '펑파이' 띄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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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사례1=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의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3월 13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300여 명이 넘는 기자들이 저마다 질문 기회를 잡기 위해 안간힘이다. 그런데 중국 기자들의 자기 소개가 전과 다르다. 인민일보 기자는 ‘인민일보와 인민망’ 기자로, 중앙텔레비젼(CCTV) 기자는 ‘CCTV와 중국인터넷TV’ 소속이라고 밝혔다. 모두 자사 관련 인터넷 매체의 이름을 홍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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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2=한·중 수교 22주년을 맞아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한국 언론인 10명을 초청했다. 과거 이런 경우 신문과 TV, 통신사 기자가 주요 초청 대상이었다. 한데 이번엔 달랐다. 사이버 공간에서 활약하는 파워 블로거 6명이 초청을 받았다.

 이들 두 사례는 뉴미디어의 약진을 의미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시기의 중국이 뉴스 전파의 플랫폼으로 신문이나 TV 등 전통 언론 못지 않게 인터넷 등 뉴미디어를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해 11월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미디어 개편의 큰 그림을 제시했다. 전통 매체와 신흥 미디어 융합(融合)이 골자다. 그 선봉에 바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서 있다.

 그는 지난 8월 18일 당의 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深改組) 회의에서 언론을 도마에 올렸다. 의외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과거 심개조가 논의한 건 호적제도나 사법제도 개혁 같이 중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 근원적 문제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반해 언론은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론이 바뀌지 않으면 중국 개혁의 성공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가 시진핑이다.

 시진핑은 소련이 무너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선전부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소련이 붕괴할 때 어느 공산당원 하나 나서 막으려 한 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 선전부에 늘 강조하는 게 ‘수토유책(守土有責, 나라를 지키는데 책임이 있다)’이란 네 글자다. 시진핑이 언론 개편의 칼을 빼 든 이유는 명확하다. 과거 당의 대변인 역할을 하던 전통 미디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선하이슝(愼海雄) 신화사 부사장 겸 신흥 미디어 주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100대 이슈 전파의 절반 이상을 파워 블로거가 주도했다. 또 70% 이상이 뉴미디어를 통해 첫 전파를 탔다.

 중국의 주류 여론이 이젠 뉴미디어를 통해 형성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시진핑이 심개조 회의에서 왜 “실력과 전파력, 공신력, 영향력을 갖춘 뉴미디어 그룹을 건설하자”고 외쳤는가에 대한 설명이 된다.

 뉴미디어 그룹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전통 미디어와 뉴미디어가 내용과 경영, 관리 등에서 깊게 융합한 형태라는 게 시진핑의 이야기다. 이를 위해 7월 22일 탄생한 인터넷 매체 펑파이(澎湃, The Paper)를 주목해야 한다. 펑파이는 현재 중국 언론은 물론 뉴욕타임스 등 세계 언론의 뜨거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중국 제1의 시사정치 매체가 되겠다고 호언하는 펑파이는 ‘호랑이 때려잡는 이야기(打虎記)’라는 코너를 통해 시진핑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중인 부패 척결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고 있다. 얼마 전 간첩 혐의로 체포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CCTV의 유명 앵커 루이청강(芮成綱)이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알린 것 역시 펑파이였다.

 펑파이는 오래 전부터 치밀한 준비를 거쳐 등장한 중국 정부의 작품이다. 중국 당국은 먼저 지난해 10월 말 경제력 기준으로 중국 신문업계 3위인 해방일보(解放日報)와 5위인 문회신민(文匯新民) 등 두 그룹을 합병해 상하이신문그룹(上海報業集團, SUMG)을 만들었다. SUMG는 한 계열사(新聞晩報)를 정간시켜 비용을 줄임으로써 자금 축적을 이루고, 또 다른 계열사(東方早報)로부터는 인력의 5분의 1을 빼내는 방법을 활용해 독립된 인터넷 언론 펑파이를 출범시켰다.

 전통 매체의 유휴 인력에 출구를 제공하면서도 사이버 공간에선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인터넷 시장의 고객과 광고주 둘 다를 잡겠다는 계획이다. 중국 당국으로선 전통 매체에 대한 구조 조정과 함께 민심의 새로운 방향타가 되고 있는 인터넷 무대를 장악하는 효과가 있다.

 펑파이가 탄생한 다음날엔 광둥(廣東)성 선전에서 선전 시정부의 투자로 역시 인터넷 매체인 첸하이미디어(前海傳媒)가 출범했다. 첸하이미디어는 오로지 금융 뉴스에만 집중한다. 그런가 하면 지난 6월 신화사는 ‘신화사발포(新華社發布)’라는 뉴스 앱을 만들었다. 인터넷 여론 장악이 목적이다. 이는 사이버 공간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맞아 이데올로기 부문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려는 시진핑의 언론 개혁이 향후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를 가늠케 해 주는 좋은 예다.

 현재 펑파이는 출범 두 달 만에 세계가 주목하는 인터넷 매체가 됐다. 펑파이의 강점은 특종 등 새로운 뉴스다. 그리고 그 소스는 당국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결국 펑파이의 힘은 거꾸로 펑파이의 약점이 된다. 정부가 제공하는 뉴스엔 여론을 이끌기 위한 당국의 의도가 담겨 있어 독립적 사고를 하는 중국 인민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 매체와 뉴미디어의 융합을 외치며 미디어 개혁에 나선 시진핑의 실험이 과연 얼마만큼의 성공을 거둘 지 관심이다.

유상철 중국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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