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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아시아 군비 경쟁 부추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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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유럽연합(EU)은 국제정치적인 외압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압력과 중국의 공세적인 태도 때문에 대(對)중국 무기금수조치 해제는 지연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독재국가가 중국 역사상 첫 민주정부인 대만을 점령할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위해 현재 보유 중인 무기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난 무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미국은 당연히 이런 무기를 중국에 팔지 않을 것이다. 대신 EU가 가공할 만한 무기 시스템을 중국에 다량 수출한다면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의 방어력을 무력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중국 본토에 배치된 600기 이상의 미사일이 대만의 도시와 군사기지를 정조준하고 있다.

위협은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일부 무기를 중국에 팔았다. 그렇지만 크렘린은 중국을 장래의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면서 첨단무기 시스템의 수출만은 피하고 있다. EU가 중국 무기시장에 뛰어든다면 러시아도 베이징(北京)의 정권에 최상의 무기들을 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북한 핵 문제에 이어 중국이 군비 증강에 나서면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EU가 대중국 무기금수조치를 해제하기로 결정한다면 이 지역의 군비 경쟁에는 불이 붙게 될 것이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정부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을 때 무기는 핵심적인 요소로 떠올랐다. 1970년 당시 프랑스 총리였던 시라크가 핵 원자로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게 팔았던 것처럼 오늘날의 시라크 대통령은 또 다른 공격적인 독재정권과 큰 사업을 벌이겠다는 유혹에 빠져 있다.

남은 문제는 경제적인 압력이다. 중국은 금수조치를 해제하지 않으면 EU 회원국과 거래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중국은 아마 독일에 대해서는 지멘스나 폴크스바겐 같은 대표급 기업들의 이름을 꺼냈을 것이다. 네덜란드에 대해서는 필립스를 들고 나왔을 것이다. 스웨덴에는 에릭슨이나 볼보 이야기만 꺼내도 예란 페르손 총리를 압박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어떤 EU 국가가 수십억 유로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중국과 맞서려 하겠는가. EU 국가들은 무기수출을 재개할 수 없게 된 것이 대만 문제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EU가 무기금수를 해제한다면 유럽은 그 결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 할 것이다. 여느 때처럼 자유국가를 지키는 것은 미국에 달려 있다.

이 상황을 60년 전과 비교해 보자. 당시 서유럽을 나치에서 해방시킨 것은 미군과 미국 무기였다. 지금 2300만 인구의 민주 대만을 지키는 미국을 겨냥하게 될 것은 중국의 손에 든 유럽의 무기일 것이다. 미 민주당 의원 톰 란토스가 말한 대로 대중국 무기금수 해제 움직임은 EU가 도덕적인 판단을 상실했음을 보여준다. 란토스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갈 뻔했으나 라울 발렌베리에 의해 구출됐다.

발렌베리는 스웨덴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스웨덴은 정치적 도덕성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보수당은 자유 대만을 오랫동안 지원해 왔다. 그러나 페르손 총리의 요청에 보수당 지도자 프레드리크 레인펠트도 동조했다. 레인펠트의 귀에 '에릭슨'이란 말을 건네면서 페르손 총리는 원하는 결과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레인펠트는 스웨덴 보수당 지도자 중 공산독재정권의 무기수출에 동의한 첫 지도자가 됐다.

그러나 레인펠트는 자크 시라크처럼 무엇인가를 잊고 있다. 리버럴한 사람들이 다음 선거에서 총리를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리버럴한 사람들은 분명한 선택을 좋아한다.

퍼 알마르크 전 스웨덴 부총리
정리=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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