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이상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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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낙관하던 일본 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국이 지난 7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상임이사국 확대 문제는) 기한을 정하지 않고 폭넓은 합의를 한 다음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표결을 통해서라도 9월 유엔 총회 때까지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매듭지으려던 일본의 방침에 사실상 제동이 걸린 것이다. 믿었던 미국이 이렇게 나온 데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반일 운동'이라는 역풍을 만났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전방위 외교를 펼치며 총력전에 나서기로 했다.

일 정부는 대외적으론 "미국이 이제까지 비공식 자리에서 해왔던 주장"(기타오카 신이치 유엔 차석대사)이라며 애써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일 외무성 관계자도 "대세에 지장은 없다. 유엔 개혁은 미국만의 힘으로 정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본심이 드러났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선 찬성하지만 미국에 비우호적인 브라질 등 다른 국가들이 진출하는 것에 대해선 반대한다는 것이 일본의 분석이다.

일본은 상임이사국 수를 현행 5개에서 11개로 6개 늘리는 유엔 개혁안을 통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려 하고 있다. 일본 이외에 브라질.독일.인도 등이 상임이사국 진출 후보다.

그러나 일본으로선 지금까지 공조해온 독일 등과 결별하고 다른 방법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 정부는 독일 등과 상임이사국 확대 결의안을 공동 제출, 6월까지 채택될 수 있도록 전방위 외교를 펼치기로 했다.

26일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의 회담에선 구체적인 대응전략을 논의한다. 191개 가맹국을 대상으로 압도적인 지지세력을 확보하면 불리한 싸움만도 아니라는 게 일본의 판단이다. 중량급 인사들로 6개 지역 '유엔개혁지역 담당대사'를 임명해 막판 세 몰이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일 정부는 '표밭'인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11일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을 만나 "콜롬비아.과테말라 등 중남미 3국에 정부개발원조(ODA)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또 22일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선 21년간의 내전이 끝난 수단의 재건을 위해 1억 달러의 복구자금을 제공한다는 선물도 줄 계획이다.

미국에 대해선 고이즈미 총리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간관계와 미.일동맹의 중요성을 내세워 막판 설득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일본의 진출을 반대하는 중국에 대해선 22일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 때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접촉할 기회를 만들어 모종의 '선물'을 제공하는 방안도 대두되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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