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주총'서 추대된 문희상 "도와달라 살려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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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상임고문(왼쪽 셋째)이 1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전·현직 당 대표 및 원내대표, 상임고문단 연석회의에서 신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됐다. 문 고문은 내년 초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끌게 된다. 왼쪽부터 정대철·권노갑 고문, 문 고문, 박영선 원내대표, 김원기 고문. [김형수 기자]

18일 오후 2시 국회 본청 2층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실. ‘신임 비대위원장 선출을 위한 추천단 회의’에 야당 간판급 인사들이 속속 모습을 보였다. 사실상의 ‘야당 주주총회’였다.

 권노갑·김원기(전 국회의장)·이해찬(전 국무총리)·이부영(전 당의장)·임채정(전 국회의장)·정세균(전 대표)·한명숙(전 국무총리)·박지원(전 원내대표)·김한길(전 대표)·정동영(전 대선후보) 상임고문에, 박영선(원내대표)·문재인(전 대선후보) 의원과 문희상(전 비대위원장)·박병석(전 국회부의장)·원혜영(전 원내대표) 의원 등 22명이 모였다. 안철수 전 대표는 개인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해답은 회의 전부터 ‘문희상 비대위원장’으로 정해져 있었다. 원로들이 중심이 돼 이미 물밑에서 조율을 끝냈기 때문이다.

 좌장격인 권노갑 고문이 첫 발언에서 “당이 어렵다. 만장일치로 문희상 의원을 추대하자”고 분위기를 잡았다.

 문 고문이 “그럼 나는 회의장 밖에 나가 있겠다”고 말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에 대한 난상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겠다는 의미였다.

 문 고문이 나가자 한 원로가 “문 고문은 친노(친 노무현)이니 피해줬으면 좋겠다. 당이 이렇게 망가졌는데 다시 문희상으로 간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정대철 고문은 이석현 국회부의장, 이부영 고문은 박병석 의원을 추천했다. 그러나 박 의원이 “난 생각이 없다”고 고사했다. 회의에 불참한 이 부의장도 “저를 경쟁 대열에서 빼달라”고 공식 발표했다.

 또 다른 인사가 “목소리 큰 순서대로 할 수는 없다”고 반대했지만 대세를 바꾸진 못했고, 결국 야당 주총 결론은 ‘문희상 비대위원장’이었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회의에서) 이견이 있었다는 부분을 없애자”고 제안했다. 이에 박지원 의원이 “만장일치가 아니고 이견이 있었다면 그렇게 해야지 왜 그러느냐”며 박 원내대표에게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문 고문의 비대위원장 낙점 사실을 발표할 때 이견이 있었다는 내용은 빠졌다. 문 고문은 19일 공식 취임한다.

 최대 계파인 친노계의 문재인 의원은 회의에서 “이번 비대위원장은 다음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관리형 비대위가 돼선 안 된다.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몇 가지 혁신 과제를 꼭 좀 해내는 그런 비대위가 되어야 한다”고만 했다. 당 주주들의 토론에선 제1야당의 현실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가장 큰 폐해로 지적되는 계파정치에 대한 자괴감이 표출됐다.

 한 참석자는 “한 번도 새누리당을 부러워하거나 우리가 달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최근엔 좀 부럽더라. 정권 재창출이 과연 우리 당에서 가능할까”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은 ‘내 옆의 동지가 없어져야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당이다. 새누리당의 장기집권이 불가피하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계파 혁신을 위한 원로회의라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 비주류 인사도 “박영선 원내대표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영입을 위해 문재인 의원 집에 찾아간 것은 아주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상한 시기에 둘이서만 협의하고 문 의원이 계파 수장처럼 비춰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계파 척결 의지를 새 비대위원장이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재선 중심당’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한 참석자는 “중진들이 입을 열어야 할 때 입을 다물고, 오히려 초·재선 의원들의 동향이나 의식하고 조심한다”며 “논쟁을 하면서 고쳐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제) 중진들이 혼을 낸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 더 박살 내면 도리어 개망신을 당한다”며 “이런 행태를 놔두면 비대위를 아무리 구성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고등학교 선배 10명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당이 존속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2명이었고, 나머지 8명은 ‘해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애정을 가진 분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글=이윤석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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