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 위해 반체제 숙청" 사다트 마지막 회견/불 르피가로지 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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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쟁과 평화의 영웅」으로 한 시대를 장식하고 간 「안와르·사다트」이집트대통령. 그는 죽음에 앞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최근 프랑스의 르피가로 지는 지난 9월말에 있었던 「사다트」와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 9월초 콥트파 교도(그리스도교 소수파), 반정부 정통회교도, 외국의 파괴공작 등에 대해 일대 숙청조치를 취한 이유는?
▲이들 조치는 헌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취해진 것이다. 콥트파 교도는 그들의 법왕을 그들이 뽑고 있으며, 법왕의 직능에 대하여는 정부나 대통령도 개입하지 않고 있다.
전 법왕은 71년에 선출되었는데 나도 그를 승인했었다. 그러나 1년쯤 후에 법왕은 정치지도자가 되기를 바랐는지 콥트파 교도들을 이집트 전체 사회와는 전혀 별개의 존재로 하려했다.
이때부터 일종의 종교적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해외의 콥트파 교도들에게 호소, 이집트의 그리스도교도들이 박해받고 있으며 이슬람교도들과 같은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그들로 하여금 믿게 했다.
-반정부 정통회교도들을 숙청한 것은?
▲나는「팔레비」전 이란 왕을 이집트에 받아들었고 그가 죽었을 때 성대한 장례도 치러주었다. 이집트는 어떤 나라처럼 광신주의의 나라는 아니다. 이집트의 반정부회교정통파들은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있었다.
나는 장래의 세대들을 의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련은 이러한 종교적 반란에 관여했는가.
▲소련은 정부와의 대립을 격화시키기 위해 전력을 쏟았다. 그들은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 교도의 층들로 양쪽에 각각 4백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선동했다.
이렇듯 국가에 중대한 위협을 끼치려는 책략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나는 소련대사와 그 협력자들의 추방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또 소련의 이러한 모략 행위에 연루된 26명의 정치인을 비롯, 두 교도 측의 과격파들을 검거토록 했다.
-체제에 반대한 정치지도자는 어떤 인물인가.
▲체포된 「파드·에딘」은 군사 반란까지 주장했다.
그는 「파루크」왕 시절의 각료로 모든 독직에 관련된 인물이다. 그는 이집트 혁명은「유혈의 혁명」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이집트에선 19년간 유혈이란 없었다.
또 한 사람은「낫세르」대통령 시절의 특권적 저널리스트였던 「모하메드·헤이칼」이다. 그는 모든 정치평론을 혼자서 독점, 다른 저널리스트들이 쓰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알아람 지의 편집장 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가다피」 리비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는 페르시아 만에서 대서양까지의 지역을 누가 지배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물음에 소련이라고 대답한 적도 있다.
-레바논 문제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레바논 대통령이 용기를 갖고 유엔안보이사회의장에게 유엔군의 파견을 요청하면 된다. 다만 이것을 공언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대통령은 미리 암살 당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의사를 표명한지 채5분도 못돼 피살된 레바논의 좌파지도자「카말·줌블라트」도 그러했다. <르피카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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