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에서 다시 만난 지난날의 스타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50년대에서 70년대초에 이르기까지 여자농구의 씨앗을 뿌리고 키워온 이 나라 주역, 「제1회 어머니농구회」가 지난 8월24일 발족한 이래 처음으로 10월3일 장충체육관에서 첫 시합을 가졌다. 스탠드를 꽉 메운 후배들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각기 모교 유니폼을 입은 왕년의 경기·숙명·평명 등 10개 학교선수 총2백30여명의 회원이 참가한 이 자리에서 이제는 왕년의 농구선수가 아닌 「한 지아비의 아내」 「아이들의 어머니」라는 입장으로 모교의 유니폼을 입고 정든 코트에 다시 섰습니다.
어머니농구회의 발족을 계기로 보다 많은 해체된 농구팀들의 부활이 있으리라 기대합니다』라고 첫 대회를 맞아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초대회장 윤덕주씨(60)의 소감이다.
예전과는 달리 마음뿐, 몸이 따라가 주지 않아 각종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구경나온 집안식구들의 열기는 마냥 뜨겁다. 처음에는 『운동을 그만둔 이래 헤비급이 된 몸에 붙은 군살이나 빼보겠다고 시작했으나 1∼2개월 지난 지금은 5㎏이나 살이 빠져 몸도 마음도 가볍다』는 50년대 국민은행 창단멤버 장국자(42·서울서초동 동아아파트)의 얘기. 우리 나라 최초 여자농구선수였던 박정희씨(50·서울강남구 잠원6동 대림아파트)는 『6·25동란전인 여학교 때 시작한 운동입니다. 1남1여의 어머니자 외손자까지 둔 할망구지만 운동을 한 덕분인지, 질병도 없고 나이보다 훨씬 젊다는 소릴 듣습니다.』
어머니농구팀의 최고령자이신 숙명팀 소속의 김순희씨(60)는 『그저 감회가 깊어요. 이 나이에 후배들과 만나 시합을 갖게되다니 가랑머리 땋고 다니던 소녀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예요.』
스탠드 곳곳에선 파이팅 소리가 요란하고 에이, 엄마 바보같이 그것도 못 넣고.....』 슛을 하려다 실패한 어머니의 작은아들은 코트의 엄마만큼이나 안타깝다. 『이미 굳어진 몸이기에 다칠까봐 만류했으나 워낙 본인이 좋아하고 다시 운동을 하고부터는 눈에 띄게 활기도 넘쳐 이제는 저도 응원하러 나왔습니다』고 이정자씨의 부군 최막고씨(44)의 자랑.
남편들의 마음도, 며느리도, 사위도, 온 가족의 마음이 코트 속을 함께 누빈다.

<목상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