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성인용품 여성인형, 시신 착각 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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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를 전담하는 경찰은 물론 살인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강력계 형사들도 몰랐다. 지난 14일 경기도 양주시 원학동 마을 앞 도로에서 발견된 의문의 여자 시신 얘기다. 경찰 조사결과 여자 시신은 다름 아닌 유사 성행위를 위한 성인용품인 여성 인형으로 드러났다. 매뉴얼대로 시신 주변 탐문수사를 펼친 경찰은 2시간 동안 이 인형을 실제 시신으로 오인한 것이다.

인형이 여자의 시신으로 둔갑한 이유는 이랬다. 인형이 발견된 것은 14일 오후 4시20분쯤. 가족들과 함께 밤을 따러 산에 오르던 이모(48)씨가 여자가 죽어 있다고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해 보니 145cm 정도의 여성으로 보이는 시신이 청바지와 같은 원단의 청색 천으로 얼굴부터 허벅지까지 덮인 채 노란색 박스 테이프로 둘둘 말려 있었다. 또 허벅지부터 다리까지는 노출돼 있었으며 무릎 밑까지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왼쪽 발 옆에는 흉기도 놓여 있었다. 신효식 양주경찰서 강력팀장은 허벅지를 만져본 뒤 시신임을 직감했다. 시신이 왕복 4차선 도로 5m 아래쪽 배수로에 버려진 점, 주변에 건물이 별로 없고 인적이 뜸한 점 등 때문이다. 추석 연휴 기간 누군가 여성을 살해한 뒤 사체를 유기한 것으로 판단했다.

현장에 출동한 50여 명의 경찰은 매뉴얼대로 목격자와 CCTV 확보 등 주변 탐문수사에 나섰다. 2시간여 만에 주변 수사를 마친 경찰은 오후 6시40분쯤 시신을 덮은 천을 걷어냈다. 시신을 확인한 경찰들은 황당해 했다. 신 팀장은 “어느 누구도 사체가 아닐 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며 “정말 사람 피부처럼 말랑말랑했다”고 설명했다. 신 팀장은 “너무 황당해 한동안 시신(?)을 쳐다봤다. 실제 살인사건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씁쓸히 웃었다.

경찰은 인형의 음부에 있는 정액을 채취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한 뒤 수사를 종결했다. 인형을 유기한 사람의 신원이 확인돼도 폐기물처리법 위반 정도로 처리할 수밖에 없어서다. 인형은 양주시청으로 보내 폐기 처분하기로 했다.

양주=임명수기자 lm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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