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구름에 감싸이듯…은유효과는 적당하게|너무 직설적이거나 추상적이면 설익은 문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홍운탁월』이라는 말이 있다. 불타는 듯한 붉은 구름에 달을 맡긴다는 뜻이다. 달을 그림에 있어 허공의 달만 덩그러니 그릴 것이 아니라 구름을 더불어 그림으로써 그 분위기의 아름다움을 높이고 달에게 한결 강한 액선트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구름에 싸여 얼굴을 내민 달. 워낙 그리고자 한 것이 달이므로 달이 구름을 거느린 것이지만 얼핏보기에는 구름의 품안에 달이 들어 있는, 그러니까 달이 구름에 의탁한 셈이 된다.
그림의 얘기가 아니라, 「문장도」(청조의 대문장가 김성탄)에 있는 것으로서, 문장에 은유(메타포)의 효과를 적절히 살리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구름에 싸여있는 달처럼, 아니, 구름에 달을 맡기듯이 나타내고자하는 의표를 은근히 내비치도록 하라는 것이다.
우리 「겨레 시」의 식구들도 그러한 슬기에 다들 눈떴으면 좋겠다. 대개 노래하고자 하는 뜻(시상)이 겉으로 드러나 있고, 그 표현도 너무 직설적이어서 탈인 것이다. 그런가하면 은근슬쩍 나타내는 경우(은유)에는 설익어 있어서 너무 추상적이거나 의미가 뚜렷하지 못하기 일쑤다. 이번에 선보이는 『하루』(김재충)와 『아가』(유승식)가 바로 그 설익은 은유의 한 본보기가 된다.
『하루』에 있어서는 종장만이 그 의미가 확실할 뿐 초장과 중종장은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인지 의미의 구체성을 가름하기가 어렵다. 『아가』에 있어서는 중종장의<금강석 섬광>이라는 비유가 문제다. 아가의 새카만(영롱한)눈동자를 가리킨 듯한데, 「섬광」은 한순간 번쩍하다간 이내 사라지고 마는 빛이 아닌가. 그렇다면 「아가눈빛」과 「섬광」은 아무래도 걸맞지 않는 비유인 것이다.
『수해복구』(채명호)의 경우도 그러하다. 중종장의<조용한 저기에도>가 의미의 확실성을 잃고 있는 것이다. 「저기」라니 어디이며, 「조용한」이라는 말로는 그 상황을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종장의 가락이 미흡한 상태여서 고쳐 두었다. 워낙은<농부는 찢긴 풍년을 기워갑니다>였었다.
『가을밤』(차정미)은 종장이 너무 손쉽게 처리되었다. 가을밤이면 누구나 흔히 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닌가.
『귀뚜라미』(방성운)는 초장이 지나치게 산문적인 발상인 것이 흠이다. 종장의 끝마무리를<말았다>고 한 것을 미진한 대로 그냥<있었다>로 고쳐 보았다. 『가을 길』(김경자)은 세수로 짜여있는 것이었는데 가운데 한 수를 잘라 내버렸다. 그것이 있음으로써 오히려 전체의 이미지가 손상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말을 좀더 자연스럽게 이끌어 갔으면 하는 욕심이다. <박경용 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