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 전출동의서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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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대학가는 일부 교수들의 전출 움직임으로 색다른 진통을 겪고있다. 이는 졸업정원제 시행과 관련, 대학생이 갑자기 크게 늘어나면서 빚어지는 대학간의 부족교원 과열 스카우트현상을 막기 위해 문교부가 지난2윌 교수가 다른 대학으로 옮길 때엔 반드시 소속대학의「전출동의서」를 첨부하도록 각 대학에 시달하면서부터 빚어지는 현상. 이 바람에 다른 대학으로 옮기고 싶어도「전출동의서」를 받지 못해 고민하거나 동의서 없이 옮겼다가 무적교수가 되는 등 부작용이 일고있다. 교수 전출동의서는 과연 필요한가 찬·반 양론을 들어본다.

<찬성>이경구<성균관대 교무처장>
대학교수가 임용기간중 학교를 옮길 때 소속대학 총·학장의 동의서를 받도록 한 것은 교수들의 예고 없는 대학간 이동으로 학교와 학생에게 주는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로 안다.
받아들이는 대학으로서는 문제가 없겠지만, 시간표까지 짜놓은 뒤에 훌쩍 떠날 경우 학교가 당황하고 학생들이 동요할 것은 뻔하다. 전출하는 소속대학 측에 후임자를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한다.
올해부터 학생이 크게 늘어 가뜩이나 교수요원이 모자라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떤 대학이든지 타 대학교수를 모셔갈 때는 상대방 대학의 양해를 구하게되면 교과운영상의 차질도 막을 수 있다.
문교부가 무질서한 교수의 대학간 이동을 억제하기 위해 전국 각 대학에 「교수인사관리지침」을 시달하고, 교수가 대학을 옮길 때는 소속대학 총·학장의 동의를 받도록 한 것은 대학과 학생을 동시에 보호하기 위한 시책으로 보인다. 모든 대학이 이를 지키게 되면 서로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가령 어떤 교수가 소속대학을 옮길 때 그 대학의 전출동의를 반드시 받게되면 한쪽에서도 그 교수가 빠질 때 생기는 공백을 때울 준비과정을 주게되고, 당해 교수는 물론, 모셔 가는 대학도 떳떳하지 않겠는가. 반면에 소속대학에는 전혀 알리지 않고, 상대방 대학과는 은밀히 전출을 추진해 임용이 된 뒤 개강직전에 사표를 내게되면 갑자기 교수가 비게 되는 대학은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다.
특히 분야에 따라서는 갑작스런 교수공백을 메우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한 학기 강의를 못하게될 우려도 있다. 소속대학의 .전출동의를 받도록 한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을 경우 교수 난이 심해진 올해부터 이 같은 일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침은 또 지켜지기만 하면 신흥 사립대, 특히 지방대학들이 스스로 교수요원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판 구실도 하게 될 것이다. 자기대학 교수로 남게 된다는 보장이 있을 때 시간강사·전임강사 등에서 교수가 될 때까지 학교생활을 학교가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명문이 아닌 일부대학에서는 강사 자격밖에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강의를 맡기고, 국내에서 주는 해외유학을 통해 전공분야의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경제적이나 신분상으로 혜택을 주는 일이 많이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친 교수조차 소속대학의 양해 없이 학위를 받고 학계에서 어떤 위치에 서게 됐다고 명문대학 또는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떠나게될 때 대학의 자발적인 교수요원 양성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문교부의 지침이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하지만 교수사회의 도의적 질서를 위해서라도 이는 지켜져야 한다. 대학교수는 고교 운동선수처럼 체면불고하고 스카웃 하는 일은 곤란하다.

<반대>김인회 <연세대교수 교육철학>
교육의질 향상 촉진|선택 자유 줘야 유능 교수들 늘어나
대학이 대학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교수가 있어야 하고 다음에 학생이 있고 시설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은 중세기이래 대학이 생겨날 때부터의 상식이고 원칙이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 나라의 대학 발달사를 보면 대부분의 대학들이 건물을 짓고 학생을 많이 모으려는 데에는 앞을 다투었지만 유능한 교수를 확보하려는 일에는 별로 정성을 쏟지 않았던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다가 금년부터 갑자기 대학생수가 늘어나게 되니까 각 대학들이 교수 충원문제로 야단법석이다. 학생은 확보되었고, 시설은 1, 2년이면 해결될 수 있으나 원래부터 부족했던 교
수의 수는 학생처럼 갑자기 늘어날 수도 없는 것이고, 건물처럼 1,2년 사이에 만들어 질 수도 없는 형편이니 대학간에 소위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해 질 수밖에 없다.
어제까지 『있기 실으면 언제라도 나가라.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는 소리를 떡먹듯이 해오던 대학 경영자들이 이제는 문교부의「전출동의서」 지침을 내세우면서 가겠다는 사람들을 마치 배신자나 탈주자라도 되는 듯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별안간에 재벌이 되고 싶어서나 높은 감투를 쓰기 위해서 대학을 옮기는 교수는 아무도 없다.
단지 자기가 즐기는 일을 보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조건을 따라 가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교수들의 이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에는 정부예산을 안들이고서도 우리 나라 대학의 학문과 교육의 질을 역동적으로 향상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대학들이 앞을 다투어 교수가 즐겁게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게 될 터이니 말이다.
오히려 문교부에서는 교수의 자유로운 이동을 권장하는 편이 현명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있는 교수를 강제로 묶어둔다면 앞으로 우리 나라 대학들의 질이 저하될 것이 분명하다. 평생동안 직장선택의 자유조차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교수가 되겠다고 나설 우수한 젊은이가 과연 있겠는가 의심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교수를 묶어놓는 미봉책으로는 앞으로도 계속 부족할 것이 예상되는 교수를 양성할 밭과 씨앗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길 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
교수충원이나 대학의 질적 차이는 대학이 책임질 일이지 문교부의 책임은 아니라고 본다. 문교부는 경쟁에서 도태되는 부실 대학들을 규제하고 우리 나라 대학가에서의 「그레셥」 법칙을 추방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바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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