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교사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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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실복도의 유리창을 닦던 국민학교 여교사가 추락, 혼수상태 닷새만에 숨을 거두었다.
사건자체를 보면 이는 단순히 추락사고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극히 우연한 잠깐동안의 개인적 실수로 일어난 불의의 사고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고의 경위를 살펴보면 거기엔 성실한 교사상의 아름다운 휴먼드라마를 보게된다.
물론 한 여교사의 추락사 그 자체는 한 여인의 불운이요, 한가정의 비극이라는 슬픈 사연을 담고 있다. 거기엔 어린 학생들의 애절한 슬픔도 있다.
또 건물자체가 안전성을 도외시한 위험한 것이었다는 데도 주목하여 국민학교 교사건축 면에서 교육적 배려가 없음을 탓하게도 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학교나 당국은 무과실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사고에서 우리가 새겨야할 것은 한 교사의 제자를 아끼는 애틋한 마음과 책임의식이다.
사고를 당한 신교사는 이날도 학급어린이들을 찻길건너까지 안전하게 인도하려고 운동장에 모아놓고 있었다. 그 때문에 청소를 서둘렀던 것이고 위험한 복도 유리창 바깥쪽 청소는 직접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교사는 분명 위험을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들 대신 그 위험을 맡아 한 것이다.
그런 신교사의 행동은 어쩌면 교사로서 당연한 것이다. 아니 교사가 아니라도 사리를 아는 성인으로선 당연한 행동이겠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에서 신교사의 행동이 유달리 고귀해 보이는 것은 웬일인가.
국민학교에서 방과후에 어린이들이 청소를 하는 것은 요즘 새로 시작한 관행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오랜 관행이며 사회가 인정하는 교육의 한 과정이기도 하다.
청소는 궁극적으로 인격도야의 한 수단방법일뿐더러 위생관념의 실제적 체험이며 또 노동자체의 가치를 가르치는데 매우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인 학교사회의 관습을 보면 교사는 청소가 다 끝난 뒤에 감독과 평가를 위해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생각하면 신교사의 경우에선 남달리 책임감 있고 성실하며 다정한 교사상을 느끼게 한다.
교사들은 현실적으로 교직에 불만 많은 것이 사실이다. 최근의 한 조사에 의하면 교직은 애상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교사가 남자 54%, 여자 39% 였다. 71%의 교사는 『수입이 적고 장래성이 없는 직업』으로 스스로 교직을 규정짓기도 했다.
이런 현실에서 교사들이 「고귀한 교직」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소홀하게 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교사들은 특히 학교의 과중한 업무와 교장·교감 등과의 인간적 갈등으로 고민한다고도 들린다.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흔히 관료적인 위압과 지시에 의해 무친되는 것에도 심한 고통을 느낀다.
그런 교사들의 고충을 이해하면서도 오늘의 교사들이 그들의 사명감과 의무에 충실하여 어린 학생들의 교육에 성실히 임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실로 학부형된 사람들의 과욕일수만은 없다.
교사는 특히 학생들과의 인간적 교호를 통해서 학교교육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할 의무가 있다.
교사와 학생사이에는 마땅히 애정과 존경심이 깃들여야하며, 그래야만 도덕적이고 감동을 주는 인간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있다.
오늘의 현실에서 그것은 우리가 갈망하는 교육에 틀림없다. 메마르고 병들었다는 오늘의 교육현장에서 그것은 너무도 목마르게 기대되는 교사상이기도 하다.
그런 교사상은 학업의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놀고 함께 일하는 교사일 것이다. 그는 결코 학생들과 유리되어 있지 않고 마음이 통하는 상태에 있는 스승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신교사는 그 교사상이 현실로 엄존함을 실증하고있다. 또 한편으로 신교사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서 묵묵히 자기직분을 다하는 결코 적지 않은 교사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 있음이 실증된 것은 실로 커다란 희망이기도 하다.
신교사의 불행에 당하여 그의 명복을 빌면서 아울러 의롭고 올바른 길을 가는 우리 교사들의 노고에 다시 감사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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