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허울좋은 대학 연구비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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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라크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가에는 등록금 투쟁이 벌어졌다.

일부 대학에서는 10여일간 총장실을 점거하기도 하고, 학생들의 압력에 굴복해 인상된 등록금을 환불해 주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등록금 인상이 무리한 것은 아니고, 외국 유명 사립대학의 등록금에 비해 10여% 수준에 불과한 인상이지만 학생들은 등록금 투쟁을 요즘 학생운동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 기자재.인건비위주 지원 시스템

사실 지난 10여년간 규모가 큰 사립대학에서는 대학 예산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약 80% 수준에서 50% 이하로 낮춰놓았다.

경영 마인드를 가진 총장들의 노력으로 기업의 기부금이 늘어났고, 등록금외 수입이 증대했으며, 대학의 연구비도 증가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는 지속되기 어렵다. 학생들은 매년 봄 춘투처럼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을 벌이고 기업의 기부금도 점점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경제 여건이 나쁜 것도 한 요인이지만, 기업도 이제는 소액주주 등 투자가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이전처럼 기업 총수가 이익금이 생겼다고 기부를 쉽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국 같은 여건에서 대학이 교육외 사업을 쉽게 확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정부 및 기업에서 지원하는 연구비의 확대다.

그러나 대학에 연구비가 증가한다고 대학 재정의 여건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학 연구비에는 기자재와 시약, 그리고 대학원생들을 지원하는 인건비 등 직접경비가 주를 이룬다.

반면에 대학의 시설을 활용하고 연구활동을 관리하기 위한 소위 '오버헤드'라고 하는 간접경비는 매우 낮게 책정돼 있다. 외국의 경우에는 연구비에서 오버헤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50%에 이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1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처럼 오버헤드가 낮기 때문에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건물이나 연구 공간은 모두 대학에서 직접 마련해야 한다.

대학의 연구는 사회적 자산이다. 연구의 결과는 교수나 대학에도 의미있는 것이지만 요즘처럼 기술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는 대학 연구의 사회적 중요성은 막대하다.

그런 점에서 정부에서 지원하는 대학 연구비가 증대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연구비의 오버헤드가 아직도 10%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연구능력이 높은 대규모 사립대학의 재정 압박은 심각하다.

이제는 연구비가 적어 연구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 등 연구 공간이 부족해 연구를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교수들은 대규모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음에도 대학에서 연구 공간을 마련해주지 못해 연구를 못한다고 불평한다.

이제는 우리도 연구비에서 대학에 지원하는 오버헤드를 외국 수준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실제 연구에 필요한 경비만 달랑 지원하게 되면 연구인력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도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안돼 연구를 못하게 된다.

정부에서 기여입학제 등 등록금 이외의 수입 창출 여건도 허용하지 않고 연구 여건은 알아서 조성하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 악성연구비 된 대학 대응자금

심지어 대학에서 대응자금(matching fund)까지 제공하라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연구비를 대학 당국에서는 악성연구비라고 하기까지 한다.

왜냐하면 연구를 원하는 교수들은 대학에서 여건을 조성해주지 못한다고 불평하지만 어려운 재정운영에서 대응자금까지 제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학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연구비에서 오버헤드가 차지하는 비율을 20%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대학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줄이기 위해서도 정부는 대학의 연구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를 확충해야 한다.

연구에 필요한 직접경비보다 간접경비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연구개발이 활성화되고 지식기반사회에서 국가의 기술경쟁력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미래의 국가경쟁력은 이공계 인력과 지식 창조에 대한 투자 효율성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廉載鎬(고려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