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194>|제74화 한미외교 요람기|제네바 회의 결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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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대표단이 14개항의 구체적인 통일방안을 제시한후 북한외상 남일이 6월5일 전체회의에서 발언했다. 남일은 한국안을 강경하게, 반대하고 특히 전 한국위원회의 대표선출에 있어서 남북의 인구비례에 의하는 것은 현재의 한국실정에 적합하지 않다며 그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8세기 아메리카의 제주가 병합되어 합중국을 창건했을 때 각주는 인구의 상위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또 스위스 칸톤(주 또는 생에 해당)의 인구차이에도 불구하고 연방정부에서의 발언권은 동일하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것이다.』
남북한 인구차이를 무시하고 동일한 숫자의 대의원을 내야한다는 남일에 대해 변영태 외무장관은 허황된 이론이라고 반박했다.
『38선은 미국의 주나 스위스의 칸튼 같은 국내 정치적 구획선이 아니다. 그것은 외국세력에 의하여 무리하게 그어진 부자연한 경계선이며 남북을 통해 국가의식이 있는 국민이 모두 이것이 소멸되지 않고 있음을 철천지한으로 알고있다.
요컨대 우리는 만일 주나 칸튼으로 된 한 덩어리의 국가이다. 남일의 통계숫자가 효과를 발하려면 미국의 어떤 주나 스위스의 어떤 카튼안에서 어떤 부분에 사는 사람의 한표가 딴 부분에 사는 사람의 5, 6표로 계산한 실례를 입증해야할 것이다. 얼마든지 기다릴테니 이런 새 숫자를 발견하거든 보여달라.』
이러한 변대표의 이론에 자유진영대표들은 대체로 수긍했다.
회의를 계속하는 중 공산 측은 한국문제에 관련한 유엔의 권위와 권능을 부인하는 발언을 계속했다.
한반도통일을 위한 이 정치회의에서 시종 두드러지게 쟁점으로 부각됐던 것의 하나가 유엔의 권위와 권능문제였다.
공산측은 1947년부터 한국문제를 논의하고 결의안을 채택해온 유엔에 대해 그 권위와 권능을 비판했다.
특히 미국의 입장에서는 공산측의 이 태도가 대단히 불만스러웠다.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상정시킨 나라가 미국이고 그후 계속 유엔이 한국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바로 미국을 비평·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은 그리 이해하기 힘든 것이 아니었다.
미국이 이 문제에 대해 더욱 신경을 쓰게된 것은 「이든」 영국외상의 발언에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이든」은 『유엔이 범인취급을 당하거나 전자유인이 지지하는 유엔의 행동이 범행취급을 당하도록 하는 행동은 일체 삼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일반에게 가장 납득이 잘될 자유선거를 들고 나가는 것이 또한 필요하니 유엔권위·권능에 관한 주장과 함께 「자유선거」를 따로 강조하는 것이 어떠냐』고 강조했다.
자유선거를 따로 떼어내는 것은 유엔감시주장을 제쳐놓고 공산측을 만족시킬 선거감시방안으로 기울어질 수 있게 하는 길을 터주는 것이었다.
한국대표단은 한반도통일을 위해 실시되는 선거가 유엔명의까지 떼어버리도록 권유된다면 「자유선거」는 자유선거가 아니라 공산조종의 선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해 「스미드」 미국국무성차관 「비도」 프랑스외상 등 우방들의 「유엔감시」 「자유선거」 2개 원칙에 대한 태도를 확고하게 했다.
이후 제네바회의에서 더 이상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유엔참전국 15개국과 한국은 6월15일 전체회의에서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회의를 종결짓는 조치를 취했다.
이날 하오 3시에 열린 회의에서 남일·주은래·「믈로토프」 등 공산국 대표들의 연설이 끝난 후 「프린스완」 태국대표가 16개국 공동선언문을 낭독했다.
『…우리는 한국의 통일·독립·자유를 가져오기 위한 유엔의 이제까지의 노력에 부응하는 한편, 유엔의 권위와 권능을 인정하고 한반도총선거가 유엔 감시하에 실시되어야하는 원칙의 범위안에서 여러 가지 제안과 해결책을 시도해보았다… 장래에 열리는 회담은 더 큰 성과가 있기를 희망한다.』
공산측은 이에 대해 맹렬한 비난을 퍼부으면서 회의속행을 주장했다. 그것은 회의결렬책임을 유엔측에 넘기려는 전술이었다.
이로써 한국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그해 4윌26일부터 토의를 개시한 제네바정치회의는 아무런 결실 없이 20일만에 막을 내렸다.
제네바회의가 결렬됨으로써 휴전협정에 규정된 정치회의는 실질적으로 무산되어 유엔측과 공산측이 한국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막혀버리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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