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7)제74화 한-미 외교 요람기(54)|한표욱|회담 앞둔 전략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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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제네바 정치회담에 임하는 미국 측 태도는 한국과 끊임없이 아주 밀접한 연락을 취하는 것이 회의성패의 열쇠라는 컷이었다.
54년4월20일 개막되는 제네바회담을 앞두고 4월20일 워싱턴에서 열린 참전국 대사 급 전략회의에서도 이 같은 입장이 여실히 나타났다. 전략회의에는 필자가 참석했다.
전략회의에 나온「델레스」미 국무장관은 그 전날 내려진 한국정부의 제네바회담참가결정을 각 대표들에게 알리고 미국은 한국대표단과 밀접한 연락을 가지면서 회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델레스」장관은 한국참가 없이는 제네바 정치회담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정치회담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덜레스」장관은 또 대한민국이 한반도에 있어서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지적하고 한우도 총인구의 3분의 2가 남쪽에 있다고 다시 주지시켰다.
통일방안에 관해 그때까지 자유선거가 없었던 북한에서만 자유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한가지 방안이 될수 있다고 말한「델레스」는 이 방안이 꼭 채택될 수 있는 최종적인 것이 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산주의자들과의 회담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고지를 설정해 놓고 차례차례 내려오는 테크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당시 워싱턴에서 파악된 비밀정보로「덜레스」는「이든」영국 외상에게 이와 같은 미국의 인식과 판단을 숙지시키고 그의 전적인 지지를 확보했다는 것이었다.
이 전략회의에서는 특히 소련회상이 베를린 4개국 외상회담에 앞으로 있을 한국통일을 의한 제네바정치회담을 중공까지 포함한 5대강국제의로 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었다는 것이 밝혀wu 이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덜레스」장관의 모든 발언은「아이젠하워」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약속한 것을 상세히 부연한 것이었지만 그가 역설한 그 자체가 한국정부에는 매우 중요했다.
필자는 전략회의 내용 중 중요골자는 먼저 전보로 긴급 보고하고 상세한 내용은 특별외교 파우치 편으로 서울에 급송 했다.
정치회담에 대한 준비회담은 제네바에서도 계속됐다. 4월23일 도착한 한국대표단과 4월24일 도착한「델레스」장관은 곧 양자회담을 통해 회담전략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회담개최 하루전인 25일 상오「로버트슨」국무차관보가 호텔 드파미유로 변영태 장관을 방문했다.
변 장관은 총선거실시 전에 중공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로버트슨」은 정치회담에서는 한국의 그 같은 일관된 주장을 되풀이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자유진영 측에서 선거실시 전에 중공군의 철수를 주장하면 중공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정치회담을 깨려 들것이다. 중공군철수문제는 집어넣어 두고 통일문제해결을 더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 중공군이 있는데서라도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양군철수 후 통일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변 장관은 이러한「로버트슨」의 의견에 강력한 반대의사를 나타내고「델레스」와 직접 상의해 보겠다고 말했다.「로버트슨」은 돌아가서 변 장관의「델레스」장관 방문에 관해 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다.
이에 따라 변 장관은 양유찬 주미대사와 함께 이날 낮12시30분「델레스」의 숙소를 찾았다.
「덜레스」는 변 장관에게 정치회담에서 유엔 측의 첫 발언을 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변 장관도 가능하면 한국수석대표가 첫 발언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덜레스」의 제의를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이것으로 보면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철저히 지지할 것이라는 느낌을 가졌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세밀한 신경을 쓰는 것이 확연했고 한국의 주장을 두둔해 주려는 자세가 역력히 나타난 것으로 우리는 보았다.
그러나「델레스」는 한국의 중공군철수주장에는「로버트슨」과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변 장관이『인지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한국전선과 대만전선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이 절대로 필요한 때가 올지도 모르니 한국문제를 너무 성급히 해결 지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자「덜레스」는 선거실시전의 중공군철수를 주장하는 한국입장을 지지하겠다고 물러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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