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4)제74화 한미 외교 요람기 (51)|유엔의 「정치 회의」 토론|한표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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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유엔은 53년8월7일 유엔사로부터 휴전 협정에 관한 보고서를 접수, 이를 인준한 후 협정에 규정된 한반도 통일을 위한 정치 회의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토론은 정치 회의 참가 범위와 의제에 관한 것이었다. 참가 범위는 소련과 인도의 참가 문제에, 의제는 한국 문제 외에 중공의 유엔 가입도 다룰 것이냐는 문제로 집약됐다.
8월17일 두개의 결의안 초안이 제출됐다. 그중 하나는 미국을 비롯해 호주·벨기에·캐나다·이디오피아·프랑스·그리스·네덜란드·필리핀·뉴질랜드·태국·터키·영국 등 13개국의 공동 제안이었다. 내용은 참전국 중 유엔사에 병력을 제공한 국가들이 원한다면 대한민국과 함께 정치 회의에 참가하고 그들이 합의한데 대해서만 책임을 질 것이라는게 골자였다.
나머지 하나는 소련 측 안이었다. 회의 참석 범위를 미국·영국·소련·프랑스·중공·인도·폴란드·체코·남북한·버마·스웨덴 등으로 하며 휴전 협정을 조인한 국가의 동의가 있으면 회의 결정이 채택되는 것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소련 안은 두가지 독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하나는 회의 결정에 대해 중공이나 북괴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돼 있었고, 또 한가지는 한국에 결정 권한을 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었던 점이다.
상반되는 내용의 두 결의안이 제출됨으로써 총회는 벽두부터 논란이 벌어졌는데 특히 회의 참석 범위가 문제됐다.
「캐보트·로지」 미 유엔 대표는 총회 연설을 통해 소련과 인도의 참석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휴전 협정에 명시된 정치 회의 참가 범위는 「양측과 관련된 정부」라고 돼 있으니 참전국에 국한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만약 비 참전국이 참가하게 된다면 정치 회의에 참석치 못하는 다른 유엔 회원국보다 이들이 우위에 서게 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문제와 관련해 열린 16개 참전국 회의에서 소련의 협조 없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방안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영국·캐나다 등의 주장에 부닥쳐 미국도 중공과 북괴가 원한다면 소련에 한해서 공산 측 일원으로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는 태도의 수정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참석 범위 논쟁은 인도 문제로만 축소됐다.
유엔 총회에서는 만약 인도가 한반도 통일 문제 합의에 끼어 들면 한국은 회의에 불참할 것이라는 풍설이 나돌았다.
이 문제에 대해 한국도 8월24일 총회에서 태도를 표명했다. 변영태 외무장관은 『만일 유엔이 인도 참석을 결정한다면 한국은 인도와 협조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유엔에 인도 참가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는 것을 인정하나 한국에도 정치 회의 참가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경고했다.
총회는 8월27일 미국과 우방이 제출한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소련 안을 부결시켰다.
이와 관련해 「덜레스」 미 국무장관이 9월2일 미 재향군인회 총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인도 참석을 봉쇄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던게 기억난다.
『미국은 인도의 한국 회의 참석을 반대했다. 우리의 그 같은 태도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휴전 협정은 한국전에. 관련된「양측」간의 회의를 소집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인도는 공산 측에도 끼지 않았고 한반도에서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싸운 유엔사 쪽에도 참가하지 않은 나라였다. 한국전에 대한 그 같은 기권은 물론 인도의 특권이다.
그러나 모든 특권이 그렇듯이 인도의 특권도 대가를 지불해야하는 것이다. 그 대가의 하나는 인도에 대한 대한민국의 깊은 불신이다. 이것은 우리가 인도를 참석 범위에서 제외시키는데 두번째 이유를 제공한 것이다]
유엔 총회는 또 정치 회의의 의제에 관해서도 한국 통일 문제에만 국한시켜야 한다고 명백히 못을 박았다.
그러나 그해 9월15일 개막된 제8차 총회에서 소련은 한국 문제를 재 토론할 것을 주장했다. 중공과 북괴가 새로운 제안을 냈다는게 이유였다. 새 제안이란 것은 정치 회의에 참가할 나라로 인도·파키스탄·인도네시아·버마를 추가하자는 것이었다.
유엔총회 개막 벽두에 으례 열리는 운영위원회에서 한국 문제 재론 여부를 놓고 치열한 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미국 등 우방은 8월에 있었던 제7차 총회에서 한반도와 관련된 정치 회의 문제는 토론이 끝났다는 이유를 들어 소련 제안을 부결하고 총회도 이 같은 운영위 절정을 채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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