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돈 중의 돈 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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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술에 취해 방황하는 「디오니소스」신의 선생 「시레노스」를 성심성의껏 환대해준 「미다스」왕은 답례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해줄테니 말해보라는 「디오니소스」의 제의를 받고 자기 손이 닿는 것은 모두 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디오니소스」는 소청대로 해줬다고 「미다스」왕은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참나무가지를 만져보니 금세 금으로 변하고 돌을 만지니 역시 금으로 변하지 않는가.

<통화제도의 기둥>
그런데 음식을 먹으려고 빵에 손을 대니 단단한 금으로 변해 먹을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부인도 아들도 만져볼 수 없게 됐다.
갈망하여 얻은 선물이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놀란 「미다스」왕은 다시 「디오니소스」신에게 찾아가 황금의 멸망으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애걸했다.
「디오니소스」는 팍트로스 강에 가서 몸을 담가 씻으라고 일러주어 겨우 황금의 마술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 후로 「미다스」왕은 부와 화려한 생활을 증오하고 시골에서 살았다고 한다-.
희랍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왕 얘기의 줄거리다.
금은 인류의 노스탤지어(향수)가 어린 재화 중의 재화다.
장식용, 재보용, 교환수단으로서 일찌기 인간이 가장 선호하는 물건이다.
인도에서는 힌두교도 신부가 시집갈 때 반드시 금을 갖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금은 인간의 상호신뢰와 함께 통화제도를 받쳐온 2개 기둥의 하나다.
금이 화폐로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2천7백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금본위화폐제도가 본격 실시되기는 1816년 영국이 화폐법을 제정하고부터다.
중세시대는 금이 퇴장하고 은화만이 통용된 적도 있으나 근세 들어서는 금이 화폐제도의 중심이 되었다.

<달러화시세 하락>
그래서 1971년 닉슨 쇼크 때까지 금은 돈 중의 돈으로 군림해왔다.
물론 지금도 금의 신인도를 따라가는 것은 없다.
다만 화폐단위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각 국은 외화준비수단으로 모두 금을 보유하고 있고 더 많이 확보하려고 애를 쓴다.
최근 미국의 「레이건」행정부는 화폐제도를 다시 금본위제로 복귀할 수 있는가를 검토하겠다는 얘기를 꺼내 의아심을 불러일으켰는데 금이 다시 본위화폐로 등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금의 공급이 세계경제의 성장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본위제를 질시하려면 ①금화의 자유유통 ②금화의 자유주조 및 용해 ③은행권의 무제한 태환 ④금의 수출입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71년 미국「닉슨」대통령이 달러화의 금 태환을 정지시킨 것은 금 준비를 감당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금 온스 당 35달러로 무제한 태환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그린백은 안정된 통화가치를 지닌 세계의 기축통화로서 행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과 달러의 연계가 떨어져 나가자 달러시세는 하락, 괄시를 받는 돈이 되었고 이 때문에 국제기준통화로서 SDR(국제통화기금의 특별인출권)가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미국정부의 금본위제 복귀론은 그래서 달러화의 영광을 되찾자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금본위제가 되든 안되든 간에 금은 가치저장수단 내지 인플레 해지수단으로서 계속 선호되고있다.

<산유국서 금 투기>
정치·사회상황이 불안할수록, 인플레가 심할수록 금은 인기가 높아진다.
골드러시 현상이 종종 벌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골드러시가 최고조에 달했던 작년1월에는 금1온스 값이 8백50달러까지 올라갔었다.
60년 대 까지도 온스 당 35달러하던 것이 76년 1백35달러, 78년 2백27달러, 79년 5백24달러.
작년 1월 미친 듯한 금 투기로 한때 8백 달러를 넘었던 국제금값은 지금은 4백20달러 선으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물건과 달라 국제경제동향, 통화불안, 정치·사회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는 것이 국제금값이기 때문에 언제 다시 금 투기가 재연될지 모른다.
금 투기의 가장 큰 돈줄은 역시 오일머니다.
중동산유국은 서독·스위스 등의 은행을 대리인으로 삼아 금을 다량으로 매입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79년 서독의 「드레스너」은행을 통해 미국 재무성이 방출한 금1백50t을 사들인 것이 대표적 케이스다.
국제금값은 뉴욕의 코멕스(상품거래소), 런던과 취리히 등의 금 선물시장에서 결정되는데 고멕스의 회원권이 한 장에 35만 달러라고 한다.
10년 전에 비해 44배 오른 것인데 월가의 증권거래소 회원권 값의 2배.
금 거래 회원권이 이렇게 비싼 것은 금 투기의 성행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자유세계의 금 생산량은 연간 1천t내외. 공급되는 금은 공업용·장식용·치과용 등으로 쓰이고 남는 것은 대외결제준비수단으로서 각 국 중앙은행의 깊숙한 금고에 보관된다.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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