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8)제73화 한미 외교 요람기(4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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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대통령-「로버트슨」회담>
「로버트슨」 미 국무차관보를 맞는 한국정부에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물론 한국안보를 위한 한미 상호방위조약 문제였지만 그밖에 휴전협정조인 후의 정치회의문제가 경제재건·한국군 증강과 아울러 중대한 문제로 돼있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53년4월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휴전협정 후 장치회담을 통해 남북한 통일을 위한 총선거 문제를 토의 할 것이라고 밝혔을 때 이대통령은 정치회의에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공산 측 대표들이 정치회의를 질질 끌면서 선전무대로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회의기간이 정확히 결정되지 않는 한 이롭지 못하다는 게 이대통령의 판단이었다.
이런 생각은 이대통령이 이미 「클라크」유엔군사령관에게 알린바 있으나 미국정부에서는 이에 대해 확답이 없었다.
이대통령이 정치회의에 소극적인 가장 큰 이유는 회의의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국제협정에 합의하고도 위약 하는 게 상습이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은 정치회의 기간 내에 합의가 없을 때는 전쟁을 재개, 군사적 승리를 통해 통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정부는 「로버트슨」방한과 관련해 회담에 임하는 입장을 미리 작정했다.
첫째, 휴전 후의 정치회의 기간을 90일 이내로 한정할 것.
둘째, 90일간의 정치회의 기간 중 중공군 철수문제에 결정이 없고 남북통일에 관한 합의가 없으면 휴전협정을 무효화, 미국은 타 유엔군의 동조 없이도 한국군과 더불어 통일을 위한 전쟁을 재개하거나 공·해군지원을 해줄 것.
셋째, 미국이 한국의 입장을 수락하면 한국군은 유엔군사령부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며 휴전협정을 반대하지 않을 것임.
넷째, 휴전 전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것.
이상과 같은 한국입장은 53년6월25일 이대통령과 「로버트슨」의 제1차 회담 때 전달됐다. 이 회담에서 정치회의에 관한 한국 측의 상세한 입장표시가 있었다.
이대통령은 동시에 휴전협정 조인 후부터 정치회담이 끝날 때까지 공산군이 한국에 침투해 파괴행위를 벌일 것이니 이를 방지하는데 미국이 전적으로 한국을 지원 해줄 것과 적군병력에 상응하게 한국군을 신속히 증강할 것을 요구했다.
6월28일 열린 제2차 회담에서 「로버트슨」은 정치회의에 관해 원칙적으로 미국은 회의에 참가하는 주권국가대표들에게 회의기간 제한을 종용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난색을 보였다.
그러나 90일간 회의를 계속하면서 만족스런 진전이 없이 공산 측이 회의를 선전무대로 이용하거나 한국에 침투·파괴행위를 자행할 때 미국은 한국과 의논해서 적절한 행동을 취할 용의는 있다고 응답했다.
7월2일 있은 3차 회담 때 「로버트슨」 은 휴전협정 조인 후 미국은 한미고위회담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덜레스」국무장관의 방한을 가리킨 것이다.
「로버트슨」은 미국이 정치회담에서 한반도통일에 대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과 회의에서의 공동보조를 재 천명하고, 90일 후에는 한국정부와 즉각 협의를 벌여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내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전쟁재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정부는 무력에 의하지 않고 모든 가능한 평화적 수단으로 유엔의 궁극적인 목표인 한반도통일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어떻게 하든지 전쟁은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을 재개하여 중공군을 축출하지 않는 한 이 땅에 평화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버트슨」은 한국정부가 원하는 대로하자면 선전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대통령은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은 선전포고 없이도 즉각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로버트슨」은 대통령특사라고는 하지만 이미 미국정부가 수차 밝혀온 입장 이상의 카드를 좀처럼 내밀지 않았다. 미국정부가 종전부터 이대통령에게 다짐한 약속을 재확인하는 것만으로는 한국정부의 휴전협정에 대한 협조를 받아내기에 충분치가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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