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명물처럼 … 서울역고가 '공중 걷는 공원'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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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를 나오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서울역고가는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과 함께 근대화의 표상이었다. 메가시티의 꿈을 담은 서울시의 고가는 1968년 아현고가를 시작으로 101개가 세워졌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대도시의 개발 방향이 ‘보행자·환경·디자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고가들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청계고가를 포함해 지금까지 17개의 고가가 없어졌고 앞으로도 줄줄이 철거 일정이 잡혔다. 서울역고가도 올해 말 철거 스케줄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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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서울시가 이 고가를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기로 계획을 180도 틀었다. 시는 5일 “서울역고가를 남대문로와 만리동을 잇는 녹지 공간으로 리모델링하겠다”며 “뉴욕의 랜드마크가 된 하이라인 파크처럼 시민 보행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본지 8월 13일 1, 8면> 10월에 설계안 국제현상 공모를 실시하고 2016년까지 완공한다는 일정까지 발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도심에서 자동차를 밀어내고 걷는 공간을 확대하는 ‘보행자 중심의 서울’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종묘와 남산을 잇는 세운상가를 ‘공중 보행로’로 리모델링한다는 계획을 지난 4일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북한산~세운상가~남산~용산공원(2017년 시공)~한강으로 이어지는 녹지 보행로가 완성된다. 문제는 서울을 동서로 가르는 철도다. 시는 서울역고가가 동서를 잇는 링크(link)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가를 보행로로 활용해 끊어진 서울성곽길을 연결하고, 고립된 가톨릭성지 서소문공원의 숨을 틔워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준도시건축’의 김영준 대표는 “서울역고가가 녹색보행로가 되면 침체된 남대문과 서울역 서부가 살아날 수 있다”며 “주변의 연세빌딩·서울스퀘어 등의 3·4층이 보행로와 연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가 벤치마킹한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도 원래는 1930년 물자 수송을 위해 건설된 2.4㎞의 공중철로였다. 고속도로 발달로 수요가 줄어 80년 폐쇄된 후 20년간 방치되면서 도시의 흉물이 됐다. 그런데 99년 몇몇 주민이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란 단체를 만들어 공중철로의 재생운동을 펼쳤다. 2004년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이를 수용하면서 5000만 달러의 예산이 투입됐다. 2006년 문을 연 하이라인 파크는 성공적인 도시 재생의 모델로 부각됐다.

 서울시의 구상에 대한 우려도 있다. 안전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크다. 감사원은 지난해 ‘서울역고가의 바닥판 두께 손실이 심각해 붕괴가 우려된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교통체증이 심해질 것이란 걱정도 많다. 고가를 그대로 두면 철거하는 것에 비해 교통 흐름에 방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원순식 청계천’으로 활용하기 위해 부작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조급하게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건국대 강성중(디자인학) 교수는 “뉴욕은 20년 넘은 숙성 기간을 거친 주민의 요구가 상향식으로 실현됐지만, 그런 기간 없이 시에서 주도하는 계획이 같은 효과를 낼지 의문”이라며 “2016년까지 완성한다고 하는데 시장 임기 내에 끝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강인식·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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