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했던 첫 해외여행…「궁측통」됐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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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언제나 사진과 영화로만 보고 동경했던 외국의 진기한 유적이나 풍물들이 요즘 들어 한껏 우리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 든다.
해외여행의 자유화 정책이 실시되고부터 우후죽순 격으로 여행 안내광고가 신문을 장식하고, 영어 공부에 대한 관심과 방법의 재고론도 분분하게 들썩거리고 있다.
바야흐로 공항은 대학생 해외연수 행렬로 러시를 이루고 가정주부들까지도 세금고지서와 밥풀 묻은 식기를 잠시 밀쳐 두고 회화 공부에 열을 낸다고 하니 덩달아 나도 가슴이 뛰고 괜스레 바빠진다. 열대 꽃향기 가득한 이국의 정취 속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여행의 순간은 누구나 상상만 해보아도 엉덩이에 신바람이 날 정도로 설레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의 부채처럼 막상 영어회화에 대한 문제가 가슴을 무겁게 만든다.
너무나 엄청난 산 같이만 느껴져서 아예 그 첫 삽질의 염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 발등에 불로서 와 닿는 것 같다.
하기야 발등의 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내게 있어서 연전에 첫 외국 나들이를 할 때부터 이미 떨어져 있었다고 함이 옳다.
애써 마련한 해외여행 기회와 어렵고도 복잡한 여권수속이 척척 진행돼 갈수록 내 가슴은 들뜨고 즐겁기보다는 뭔지 모를 착잡함으로 나날이 우울하고 기운이 빠져 갔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드디어 출발일자가 이틀 안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대단치도 않은 구실을 내세워 출발 날짜를 연기해 버렸고, 그리고는 이 끝없는 우울의 정체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영어에 자신이 없음으로 해서 오는 모든 것에 대한 재미없는 예감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웠으니 10년 이상 영어공부를 한 셈인데 이럴 수가 있을까 생각하니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누구에겐지도 모를 원망이 같이 밀려와서 더욱 속이 상했다.
『얘, 너무 걱정마. 내가 기찬 것 하나 가르쳐 줄께. 이것 하나면 만사오케이더라.』
나의 우울을 보고 한 선배가 깔깔 웃으며 비행기 속에서 펴보라고 쪽지 하나를 쥐어주었다.
드디어 겁먹은 촌닭 같은 모습으로 나는 그 쪽지를 쥐고 30여년 동안 한번도 떠나 본적이 없는 사랑하는 나의 조국을 떠나게 되었다.
비행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하기 무섭게 그 쪽지를 무슨 특효한 부적이라도 모시듯 조심스럽게 펴 보았다.

<궁즉통이라!>쪽지에 쓰인 선배의 한마디였다.
오오 통재라!
그러나 나는 선배의 오기 어린 격려 덕으로 베짱과 용기가 생겨 비행기를 열다섯번이나 갈아타고 혼자서 여러 나라를 무사히 돌아다녔다.
그러나 말이 무사히지, 영어를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성과와 깊이를 가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절절했고 속으로 이를 깨물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그 분함을 당장 복수라도 하듯이 비로소 영어와 정면대결을 시작했다. 정직하게 기초부터 다시 해나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동안 우리말 속에 영어를 자주 겪어 쓰는 사람을 속으로 경멸했던 것조차를, 그리고 대학시절 영어에 미쳐서 귀에다 이어폰을 꽂고 다니던 남학생을 그 이유 때문에 딱지 놓았던 것까지를 모두 늦게나마 미안해하며 영어에 관한 한 많이 뻔뻔스럽고 적극적이 되려고 노력했다.
한국인인 내가 영어를 잘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게 부끄러운 것은 기실 아니다. 다만 교육의 방법 탓이었건, 어쨌건 간에 중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10여년씩이나 영어를 배웠음에도 이 꼴이 된 것이 속상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이번 여름은 어차피 너무나 보기 싫고 더운 것들이 많아 시(시)도 잘 써 질 것 같지 않으니, 멋있는 야자수의 낭만이나 머릿속에 그리면서 영어공부나 해 볼까.
문정희
◇약력47년 출생 ▲동국대국문과졸업 ▲69년「월간문학」신인상으로 문단데뷔 ▲76년 현대문학상수상 ▲시집『꽃술』『문정희 시집』『새떼』외, 산문집『젊은 고뇌와 사람』『청춘의 미학』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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