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타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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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요일 대구의 최고기온은 방도8분. 경배 실내체육관에 모인 1만여명 관중이 약속이나한 듯 부채질을 하고있는 모습을 보아도그 더위가 짐작된다.
복서의 글러브에 감긴 접착테이프마저 땀에 젖어 풀어질 정도였다.
그런 열기속에서도 도전자 김환진은 야생마처림 깡총깡총 뛰었다. 중계아나운서는 보기가 무안했던지 초반부터너무 힘을 쏟지 말라고 고함을 지를 정도였다.
그러나 김환진은 지친 기색 하나없이 계속 챔피언에 달라붙었다. 어떤 때는 링을 빙빙 돌며 마치 꼬마 알리처럼발놀림이 민첩했다. 때로는 챔피언의 턱밑을 파고들어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강펀치나 다운이 없이도 챔피언「플로레스」를 KO로 물리친 것은 바로 김환진의「끈덕짐」이었다. 김의 발명은 타잔」이고 「플로레스」 「늙은 여우」라 부른다지만 어제의 챔피언전은 과연 맹수를 몰아붙이는 타잔의 용맹을 연상시킨다.
김환진의 이번 승리는 13회 KO승. 「플로레스」에게 더 싸울 힘이 없음을 간파한 주변의 판단이었다. 코너에 폴린「플로레스」가 1분여 동안 소나기 펀치를 맞으며 어쩔줄 몰라하는 광경은 스포츠로는 더없이 통쾌했다.
로프다운이란 로프에 기댄채 더 싸울 힘과 의지를 표시하지 않을 때 심판이 내리는 판정이다. 홍수환과 「사모라」전 에서 홍이진 것도,미들급 통합챔피언전에서 「오벨메이아스」가 「해글러」에게 패배한 것도 모두 로프다운이었다.
초반부터 밀어붙이던 김환진 13회까지 끈덕지게 늘어붙은 저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한마디로 연습과 훈련의 축적이었다.
5개월동안 매일아침 서울운동장 30바퀴에 해당하는 격심한 로드워크가 그의 단신과 정부의 신체속에 저력으로 축적된 것이다.
복싱에서 강훈은 곧 챔피언십을 얼마나 유지할수 있는가로 연결된다. 「알리」의 말노가 명성에 비해 흐지부지 끝난 것이나많은 챔피언들이 타이틀을 쉽게 잃어버리는 것이 모두 안일과 자만에 빠져 체력관리를 소홀히 하는 탓이다. 정신의 해이가 가져다준 필연이다.
지난3월 일본의 천재적 복서「구시껜」 이 바로 「플로레스」에게 생애처음의 KO패로 타이틀을 내줬다.
이것도 결혼을 앞두고 「구시껜」의 정신무장이 흐트러진 때문이라고 주위에선 지적한다.
우리나라 11번째의 세계 챔피언이된 김환진은 30세까지 타이틀을 지키겠다고 했다. 올해나이 26세이니까 4년을 더 싸워야한다.
아뭏든 김군의 작은 타잔같은 모습은 우리민족의 깊은 곳에 숨은 활력이랄까, 기운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그점이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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