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속의 한국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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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중문화의 대종을 이루는 영화예술이 근자에 더욱 더 침체일로를 걷고있어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올해 의무제작편수는 명목상으로는 80편이나, 이들을 작품으로, 또는 한상품으로 평가할 매는 우리영화의 문제가 결코 낙관할 상황이 아님을 알수있다.
금년상반기만해도 관객1만명 이하의영화만도 수편에 이르고 있으며 심한 경우엔 1회 단2명의 관객을 놓고 영화가 상영된 경우조차 있었다고 한다.
영화관도 해마다 줄어 7l년에 7백17개에 이르던 것이 작년말엔 4백47개로 줄었으며 다시 지난6월말엔4백9개만이 남게된 실정이다.
이것은 우리영화현실의 단적인 표현이어서 그대로 방치할수 없을뿐아니라 빈사상태의 우리 문화현실전반의 타개를 위해서도 그대로 방치할수없는 사태라 하겠다.
최근 영화계에서 영화법개정 논의가 일고 한편으로 문공부와 영화진흥공사등 영화당국이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는것도 그때문이다.
당국도 이기회에 영화부진의 원인을숨김없이 파헤침으로써 과감하고 뚜렷한 개선노력을 강구해야할 책무를지고있음을 통감해야겠다.
우리 영화의 문제는 물론 단순하지 않고 영화종사자 자신의 부실에도 책임의 상담부분이 있음은 사질이지만 제도적 개선을 통해서 몇가지 가능한 현실타개의 방안이 가려질 수도 있다.
그 첫째는 영화제작의 개방이다.
그것은 기존 영화사만이 영화를 제작할수 있다는 현영화법의 규제를풀고, 재능과 창의력을갖춘 영화인이면 누구라도 영화를 제작할수 있는 길을 여는 일이다.
기존 영화사가 어느 면에서 결코 적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 영화사들이 만들어놓은 영화들이 「영화불황」의 책임을 면할수 없다고 생각하면 외국영화 쿼터배정을 위한 영화제작의 타성이 이젠 제거되어야한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지금까지 영화제작자들은 지난 10여년동안 당국의 비호아래 영화제작과 쿼터배정이라는 독과점의 특권속에서 엄척난 부를 축적했지만 그 부를 영화의 진흥에 재투자하는 대신영화외적사업에 더 투자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이같은 구태의연한 제도를 고집하면서 영화의 진흥을 기한다는것이 과거 10여년의 경험으로 보아 불가능한다는 것도 분명해진다.
미국에서도 메이저는 8개지만 군소의 독립프로덕션은 무수하다할 만큼 많다.
근래 할리우드중심의 대형영화시대가 퇴조하고 「오프·할리우드」 시대로 진입하여 적은 비용으로 개인적자유창작을 통해 영화의 새경지를 개척하는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음도 간과할수 없다.
그 결과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보통사람들』등 최근의주요 영화수상작품들이 거의 독립PD시스팀의 산물임도 잊지말아야겠다.
이것은 대작만이 반드시 좋은 영화가 아니며 적은 비용으로 만드는소품체제라도 작가의 의욕과 의식이작품으로 홀륭히 형상화할수 있다는 생생한 예다.
둘째로 제작의 자유와 함께 외화수입쿼터 보상제와 이를 위해 운영되고 있는 「우수영화제」의 개폐도 이뤄져야겠다.
「우수영화」의 성격이 영화예술자체의 우열이 아니라 국책성의 테두리로 지나치게 한정된다면 우스운일이거니와 질은 여하간에「배정」에목적을 두고 억지춘향으로 우수영화를 지정하는무리를 빚어서도 안되겠다.
세째는 영화검열제의 재검토다. 영화검열은 그자체가 사회공서의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없앨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모호한 기준으로 공연윤리위원회가 검열한다면 오히려 마이너스작용이 더 크다고 하겠다.
오로지 대중에 영합하기위한 외설과 폭력이라면 가위질도 있을수 있겠지만 소아병적인 엄격주의로 예술성을 전혀 무시한 검열을 자행해서도 안되겠기 때문이다. 검열은 미국의 예에서처럼 순수한 민간인사들의 자율과 양식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겠다.
현재의 검열하에선 진정한 의미의영화예술이 꽃필수 없으며, 그같은 낙후된 영화를 가지고 국제영화제에서실력을 겨룰수동 없으려니와 흥행은물론 수출경쟁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수도 없는 일이다.
이렇게 볼때 우리영화의 육성을 위한 당국의 근본적인 대책이 장기적문화정책의 차원에서 새로 신중히검토되길 기대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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