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 '核재처리' 도박 안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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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어렵게 성사된 북한.미국.중국 3자회담이 이번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리기도 전에 북한이 엉뚱한 '폭탄성 발표'를 해 회담의 전도를 비관적으로 만들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폐연료봉에 대한 재처리 작업까지 마지막 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발표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분명한 것은 베이징 회담을 앞둔 북한의 일종의 교란전술로 보인다.

북한이 택한 문맥상의 모호성은 북핵 진전상황에 대한 관련국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북한이 사용후 연료봉의 '재처리'와 '재처리 준비' 중 어느 것을 의미하는지가 불분명하다. 어느 쪽이든 간에 북한에 대한 국제적 신뢰감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노리는 바는 대미 (對美)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고도의 협박계략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북한 특유의 이러한 벼랑끝 공갈전술이 부시 미국 행정부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북한은 오판에 따른 대가를 걱정해야 한다.

이라크 전쟁에서 드러났듯이 부시의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유엔의 결의와 관계없이, 프랑스.독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제공격을 마다하지 않았다. 미국이 북한의 발표에 대해 "우리 눈에 모래를 집어넣는 모욕"이라고 분노한 배경을 북한은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북한이 진정으로 북핵 문제는 물론 북.미관계를 해결하려는 자세라면 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얕은 술수로 상대를 자극하기보다는 정확한 상황과 당당한 입장을 개진해야 한다.

북한이 핵폭탄을 보유한다고 해서 전쟁억지력이 생기고 나라가 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위험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정권이 연명된다 한들 민생이 피폐해진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이 후세인의 수많은 동상이 이라크에서 훼손된 교훈이다. 북한이 지금 취할 최선의 정책은 먼저 핵을 버린 후 고립주의를 청산하고 국제사회에 참여해 이웃나라들의 협조를 받아 자기 국민을 인간답게 살도록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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