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털방· 범털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시간이 흐르면서 소매치기 집단탈주사건의 전모가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궁금증을 풀게 된 시민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반면 구치소 안의 허점이 들추어지게 되자 교정 당국의 이맛살은 날이 갈수록 찌푸려진다.
『같은 감방에 3명이 수용됐다』는 공범 이형기(검거)의 진술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행정법에도 『…사건에 상호 관련이 있는 자는 분리 수용하고 상호 접견을 금지한다.』고 못 박혀 있다.
그 시행령에는 공범 이송 때의 동행 금지까지 나와 있다.
미결상태에서 공범의 분리는 교정의ABC다.
신입자는 「범털방」이냐 「쥐털방」이냐에 따라 수용생활이 얼마나 편한가가 결정된다.
「법털방」은 수준 높은 화이트 칼러 죄수들을 모아놓은 방이고 「쥐털방」은 살인·강도 등 흉악범들의 방을 뜻하는 구치소 안의 은어.
「줘털방」에 들면 신고식이 고된 것은 물론 사식도 다 뺏겨 10년전까지만 해도 「범털방」에 들어가려면 돈을 집어줘야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달아난 노 일당이 입감될 때 교도관은 『이중에서 공범자는 손들어』했고,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그냥 수용했다는 말까지 들린다. 이형기가 손을 들려하자 이상훈이 옆구리를 찔러 주춤하는 사이 교도관이 이를 지나쳤다는 것이다.
별(전과) 이 몇개씩 달린 전과자를 이렇게 취급하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최근 교정행정이 많이 현대화됐다지만 교도관의 직업의식은 말이 아니다.
박봉에 격무인데다 사회인식까지 형편없이 나빠 연 평균 이직률이 13%로 일반직 공무원의 2·5배나 된다.
교도관들 스스로 비하하고 있으니 전체적인 수준향상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번에 사고를 낸 영등포구치소 수위실 벽엔 근무수칙보다 법무부장관 차에서부터 교정과장까지의 차번호가 적힌 표가 더 눈에 잘 띄게 붙어있다고 공범자를 한방에 수용하고, 같은 차에 호송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면서 법무부의 차 넘버만 적어놓고 쳐다보는 것이 오늘의 교도관의 직무일까.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법을 어기고 있으니 상상도 못할 탈주 극이 백주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권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