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한 분야에 빠져 살다간 조선시대의 매니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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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출전이 알려지지 않은 이 4자 성어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이가 있다. 정민(한양대·국문과)교수가 그다. 조선 후기 한문학 자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대열의 맨 앞줄에 서 있는 정교수는 1990년대 중반부터 각종 기고와 출판을 통해 ‘불광불급’의 조선시대 사례를 소개해 왔다.

이번에 펴낸 『미쳐야 미친다』는 그 같은 작업의 1차 결산이다. 계간지 ‘문헌과 해석’등에 기고했던 글과 새로 쓴 글을 모아 펴냈다. 1차 결산이라 한 것은 앞으로 그가 해갈 작업도 ‘불광불급’이란 주제의 연장선에 서 있으리란 예감 때문이다.

“미쳐야 미친다!”면서 정교수는 “세상에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 일은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켜보는 이에게 광기로 비칠 만큼 나를 온전히 잊고 미친 듯이 몰두하지 않고는 결코 남들보다 우뚝한 보람을 나타낼 수가 없다”고도 했다. 학문도 예술도 사랑도 예외가 아니다.

등장인물은 주로 조선의 18세기를 살다 간 각종 분야의 매니어들이다. ‘꽃에 미친 김군’‘표구에 미친 방효량’‘벼루에 미친 정철조’‘ 굶어죽은 천재 천문학자 김영’‘엽기적 독서광 김득신’등이 그들이다. 이 같은 매니어들의 삶을 통해 조선시대에 대한 통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물에 대한 탐구 자체보다는 내면으로의 침잠을 중시했던 성리학의 시대가 18세기에 이르러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밖에 ‘허균과 화가 이정’‘권필과 송희갑의 강화도 생활’등 만남을 주제로 한 글과 함께 이옥·박지원·이덕무·정약용·홍길주 등의 산문을 통해 살펴본 ‘일상 속의 깨달음’에 대한 글도 실려 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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