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늘어난 연구원들 이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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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최근 들어 연구원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떨어진 연구원 대우. 부담 있는 수탁연구, 장래에 대한 불확성 등으로 많은 연구원들이 마음의 갈등을 겪고있는 것이다.
통폐합을 계기로 그 동안에 쌓였던 갈등이 표면화된 듯 연구소마다 많은 중견연구원들이 대학·산업계로 이동했다.
대학의 정원이 크게 늘어나 많은 교수요원들이 필요한 점도 있었지만 연구소 연구원들 사이에 은연중 대학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싹터 온 것도 무시할 수 없다.
H연구소의 경우 올 봄에 24명의 박사 중 5명이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과학기술원은 지난 1월에 10여명의 박사들이 흔들려 부·실장들이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금년 들어 각 연구소의 10∼15%의 중견연구원들이 대학이나 산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연구원들이 꼭 대우가 좋지 않아 자리를 옮긴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급여가 지난 3∼4년이래 대학이나 산업체에 비해 별로 오르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연구원들은 모두 원급·선임급·책임급으로 직급이 구분돼 각각 1∼20호봉까지 나누어져있다.
이 호봉은 과기처 표준호봉지침에 근거한 것이나 실제로는 연구소마다 운영상태에 따라 적게는 1만원에서 많게는 4만원 선까지 차이가 난다.
직급승급은 일정 점수에 이르면 심사에 의해 올라간다.
점수는 박사 5점·석사 2점·1년 경력 1점이며 연구소 근무연수 5년마다 1점이 가산된다.
보통 20점이 되면 선임에서 책으로 올라가는 심사대상이 되며 호봉조정의 근거로도 이용된다.
따라서 표준호봉의 최고수준은 실제로는 거의 없어 대개 각급의 중간 호봉이 현재 지급되는 최고 수준이다.
K연구소의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책임급 10호봉을 보면-.
본봉 (세금공제 전)이 65만6천7백원이며 여기에 연구비 (7만3천원)임와 조사활동비 (30만원)가 붙는다.
합하면 1백만원 선이나 이 수준에 오르기 위한 경력은 대졸 후 30년, 박사 후 21년 정도가 소요된다.
선임급 10호는 봉급 43만5천원에 연구수당 5만원, 연구활동비 15만원이다. 소요경력은 대졸 후 18년, 박사 후 9년이다.
판공비라고 할 수 있는 연구활동비를 제외하면 결코 타 직종에 비해 옛날과 같은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박사 초임은 선임 4호봉(36만원)을 받는다.
앞으로 급여체제는 관에 묶여 전처럼 연구소단위로 조정할 수 없게되어 있다.
대덕연구단지 한 연구소의 J실장은『전 연구소에 표준호봉제를 적용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을 무시하고 연륜만 중시한 것이다. 유능한 사람의 스카우트나 해외에서의 유치를 어렵게 하고있다』고 지적했다.
표준호봉체제는 신진 과학자를 많이 데려와야 하는 후발 연구소에는 낮은 호봉이 적용돼 반발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기처에서도 이 체제를 시행하는데는 허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 금년에는 전년도 수준에서 10% 올리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는 궁여지책을 강구했다.
가장 매력을 갖는 아파트제공도 최근 늘어나는 연구원 수를 감당하지 못해 각 연구소들이 아파트배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대덕단지의 경우는 하나의 경제단위를 이루지 못해 감기만 들어도 대전까지 나가야하는 등 큰 불편을 겪는 실정이다.
이런 금전·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70년대 후반기부터 크게 떨어지기 시작한 연구원에 대한 사회적 지위와 인식도 그들을 괴롭히고 있다.
더우기 완전히 버리지 못한 서구식 사고와 생활, 커 가는 관의 입김, 자기계발기회의 상실 등으로 자꾸 연구실 밖을 기웃거리게 되는 것이다.
이제 연구원들도 누가 뭐라 해도 한국의 연구개발을 이끌어간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확고히 할 때가 온 것 같다.

<장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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