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들은 왜 방황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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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재수생 K군은 오늘아침 또 한번「배지없는 학생」의 서글픔을 맛봤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안내양에게 대학생용 회수권을 내밀자 안내양은『학생예요?』하고 눈을 치켜 떴다. 순간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이 질린 K군의 얼굴은 마치 모닥불을 끼얹은 듯 확 달아올랐다. 『작게는 버스타는 일에서부터 크게는 어쩌다 한번 술 한잔 마시는 얼까지 주위에서 눈총을 받습니다. 「재수생인 주제에…」하고 말입니다. 도대체 재수하는 게 무슨 죄라도 것는 겁니까? 매일을 자신의 장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주의로부터의 까닭 없는 냉대와 싸우며 사는게 바로 재수생입니다. 』
K군의 이유 있는 항변이다.

<술 한잔 마셔도 눈총>
대학입학정원이 전례없이 대폭 늘어난 올해라고 해서 재수생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지난번 예비고사 때 총 지원자는 57만5천 명에 입학정원은 전문대까지 합쳐 30만l천명. 그러니까 약27만 명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고, 이들 중 「상당수」가 현재 재수 준비중이다.
입시관계 전문가에 따르면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10만 명은 재수를 한다고 봐야 한다는 것.
17만4천8백 명의 재수생이 응시했던 작년 예비고사의 경우와 비교할 때 약40%이상이 줄어든 것인데, 대학증원과 징집연령인하가 주된 이유일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금년 재수생의 특징이라면 학생 수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력수준도 크게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간혹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개 예시성적 2백30정미만의 학생들입니다.
학생지도의 면에서 불때 예년에 비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크게 줄었어요. 학생수가 줄고 실력이 낮아진 결과로 봐야 할까요? 대체로 「양순한」학생들이 많은 것 같아요.』학원경력 7년의 J학원 사회과교사 오모씨의 얘기다.
재수생은 재수 형태에 따라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학원파와 비학원파가 바로 그것. 준학교식 입시교육으로 그 동안 대학임시에서 큰 성과를 올렸던 학원들은 최근 들어 상당히 쇠퇴하고 있긴 하지만, 현재 서을에만 50여 개에 약3만 명, 전국적으로 2백50여 개에 5만 명 이상의 재수생들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비학원파는 추로 공공도서관과 사설독서실을 이용하는 독학생들인데 서울 남산 국립중앙도서관의 경우 1일 이용자 8백 명중 40%가 이들이며 그 밖의 공공도서관도 이와 비슷한 실정이다. 전국에 7백30개소, 좌석수 6만2천8백 개(80년 4월말현재)의 사설독서실은 한때 이용자의 반가량이 재수생이어서, 이들에게 침식까지 제공하는 변태운영으로 특히 재미를 봤으나 『밤11시 이후의 운영이 금지되면서부터 이용자수가 크게 줄어 운영이 어렵다』는 서울 행당동 H독서실 주인 이모씨의 하소연이다.
일반적으로 재수생들이 학과공부이의에 큰 고민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추위로부터의 멸시와 냉대. 연전에 C학원이 재수생 5백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약52%의 학생들이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생각하여」공부이전에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민으로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으며, 주위의 태도는 멸시·냉대·무관심이 대부분이고 (81%), 동정과 이해로 대하는 경우는 매우 적은 것(12%)으로 나타났다.

<오계 잘 지켜야 성공>
『이 같은 주위로부터의 냉대에 대해 잘못된 형태로 반발하는 것이 바로 그 동안 사회문제가 되어 온 재수생이 관련된 각종 비행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와선 이것도 크게 줄고있는 추세예요.』S학원 조모교사의 말이다. 재수생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깨서는 안될 오계가 있는데 술·담배·당구·데이트·지각이 그것. 최근엔 디스코 클럽 출입이 이에 추가됐다.
이중에서도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 술·담배·당구. 특히 흡연은 대부분의 학원들이 학원 내 흡연을 제적 등 강경조치로 대처하고 있으나 『사실상 성인이며 그렇다고 정규학생도아닌 그들에게 그 이상 어떤 지도를 할 수 있겠느냐』고 한 학원관계자는 반문한다.
한번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대학진학이라는 어려운 고지를 힘겹게 오르는 재수생들. 그들은 우리 사회에 냉대보다는 너그러운 보살핌을, 무시보다는 용기를 북돋워 주는 따뜻한 격려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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