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의 꿈 이뤘지만 오해 살까 두렵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김현옥씨(55·서울포인동35)는 자신의 교장취임에 대해 『사실은 평소부터 조용한 시골학교에서 선생노릇을 해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번 결정은 오랜 그 꿈의, 결실』이라고 말했다.
『분에 넘치게 엄청난 벼슬도 지내봤지만 이제서야 진짜 꿈을 실현하게 됐다』고 흐뭇한 표정이다.
김씨에게는 어린 시절 고향 진주의 어느 국민학교에서 일하며 선생님이 되기를 꿈꾸었다는 소문이 그가 현직(현직)에 있을 때부터 있었다.
『낚시하러 전국을 다니시면서 시골의 자그마한 학교를 보시면 늘 저런거나 하나 맡아서 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해 오셨어요』
부인 오정자씨(53)는 김씨의 「평소의 꿈」주장을 뒷받침하면서 이번 결정은 집에서도 모르게 갑자기 이루어 졌다고 했다.
『허상만을 그린채 농촌을 버리고 무작정 도시로만 향하는 농촌 젊은이들을 붙잡고 혼자의 힘이나마 농촌문화를 지켜보고자 하는 도전의식이 결심을 굳히게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김씨의 말은 그가 60년대말 「서울의 모습을 바꾸어 놓은」도시개발의 기수였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를 느끼게도 된다.
공직생활의 여러 사업 중 『흐뭇하게 기억되는 일은 별로 없고 여러모로 부끄러울뿐, 되풀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요즘 심경.
『이번 교장취임에는 지난날의 실수를 조금이나마 씻어보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보다는 오해를 사는 일이 있을까봐 두렵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62년 욕군준장예편과 함께 부산시장에 임명돼 부산시장 만4년. 서울시장 만4년, 내무장관 만2번을 거치는 동안 「불도저시장」「돌격 장관」으로 독특한 이미지를 심었던 그. 70년 와우아파트사건으로 서울시장직을 물러나 71년엔 마포에서 국화의원에 출마하기도 했고 내무장관을 그만둔 다음에는 소아마비협회이사장·유드호스텔협회장을 잠시 맡기도 했다. 한때는 「망명설」이 나돌아 시정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와도 친근할 수 있는 원만·원숙한 시민으로서 평범한 자연율(자연율)속에서 나름대로 살고 싶다』는 술회다.
시골학교에서 아이들과 풀을 뽑으며 한데 어울려 『내 자식을 가르치는 기분으로 모든 정열을 쏟아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다짐한다.
3남3녀의 자녀는 대학l년인 막내아들 외엔 모두 출가했거나 학업을 마쳤다. 김씨는 오래 전에 내놓은 싯가 l억원쯤 되는 포인동자택이 팔리는 대로 내외가 홀가분하게 시골에 내려가 아주 파묻혀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병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