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돌볼때가 가장 행복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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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프랑스」의 새 퍼스트 레이디가 된 「다니엘·미테랑」 여사(57)에겐 그 영예가 썩 내키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수줍음 많은 소녀처럼 매사에 조심스럽고 소박해 항상 다른 사람들앞에 나서기를 사양하는 그녀의 성품때문이다.
「지스카르」 후보와 치열한 각 축전을 벌였던 지난 선거운동기간중에도 「다니엘」 여사는 시종 남편 「미테랑」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며 의논상대가 돼주고 남편의 건강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했을뿐 일성당원들의 부추김을 받아 표면에 등장한 일은 한번도 없었다. 특히 그녀는 사진기자들의 카메라를 싫어해 어민 기자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74년 대통령선거운동이 한참 치열했을 때 가까운 친지가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당신은 무슨 일을 하겠느냐』고 물었을때 그녀는 『어느 곳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모든 사람들의 최후의 안식처. 마지막 보루가 돼주겠다』고 했다.
어느때나 단정하게 손질한 갈색머리카락, 보는 이를 사로 잡을듯 광채있는 푸른 눈의 「다니엘」 여사는 「부르고뉴」 태생의 엄격한 교육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서양여성의 면모보다는 어딘가 기품있는 동양여성의 미덕을 엿보이게 하는 것도 어려서부터 몸에 익힌 가정교육이 그 바탕인 까닭이다. 「다니엘」 여사가 「프랑스와·미테랑」을 처음 만난 것은 세계제2차대전이 일어난 이듬해로 래지스탕스운동의 동지로서였다.
향리인 「베르등」에서 중학교장으로 일하던 부친 「구즈」씨는 「나치」 독일의 괴뢰였던 「비시」 정권아래 더이상 교육자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가 없다고 여기고 학교를 뛰쳐나와 래지스망스운동에 가담했다.
「다니엘」 여사의 어머니도 중학교사였으며 사회주의자로 남편과 함께 레지스탕스운동에 참여했다.
후프를 따라 「다니엘」 여사가 자원간호원으로 레지스탕스운동에 투신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때 레지스탕스운동의 핵심멤버로 계속 「히틀러」의 「게슈타포」에 쫓기던 「미테랑」을 처음본 「다니엘」은 그의 과묵하면서도 호방함 성품과 지적인 품모, 타는듯한 이상에 끌려 20세가 되던 해 그와 결혼했다.
이로부터 「다니엘·미테랑」 여사는 37년간 남편의 길고 험난한 정치여정의 동지로서 내조를 다해왔다.
이제는 성장해 신문기자와 정치인으로서 각기 제몫을 하고있는 장남 「장·크리스터퍼」(34)와 2남 「길베르」 (32)에게 있어서 「다니엘」 여사는 세상에 둘도없은 자상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파리」 5구의 자택은 항상 깔끔하게 여사 자진의 손으로 손질되고 정돈돼 왔으며 그녀는 집에서 가사를 돌볼때가 가장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내처는 활동적인 여성은 아니다. 그렇다고 탁자위의 꽃병처럼 아무일도 못하는 나약한 여자도 아니다』 「미테랑」 대통령의 이같은 부인평을 미소로 받아들이고 있는 「다니엘」 여사는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말없는 가운데 대통령을 보필할 것으로 믿고 있다. <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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