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a 포커스] 치유 능력 있는 샤먼, 대부분 시베리아 출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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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스웨덴, 그린란드, 멕시코, 키르기스스탄, 몽골리아, 카자흐스탄에서 온 ‘가장 영험한 샤먼’ 13명의 샤먼들이 남시베리아의 투바 공화국의 국제샤머니즘문화축제 참석,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리아 노보스티]

“가난한 이들, 부자, 비참하고 불행한 사람, 알코올 중독자들이 나를 찾는다. 그들을 돕는 데 최선을 다할 뿐이다.” 샤먼 마르크 구슬랴코프의 말이다. 그와 나는 ‘그의 사무실’이라고 부르고 싶은 곳에 앉아 있지만 선뜻 사무실이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방은 그림과 의례용품으로 장식돼 있다. 테이블 앞 벽에는 정교회 성상들이 걸려 있고, 구석에는 늑대 가죽으로 된 샤먼 옷과 샤먼의 징표인 탬버린이 걸려 있다. 마르크는 그러나 ‘보통사람처럼’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이다. 우리가 있는 이곳은 스텝 초원이나 타이가 침엽수림이 아니라 모스크바시 소콜니키구였고, 노랫소리 대신 선풍기의 소음이 들려왔지만 고대 세계의 실체와 기적의 느낌이 내 주변을 감돈다.

내가 방문했을 때 마르크는 내 주위를 주의 깊게 살피더니 “많은 사람이 함께 왔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수많은 내 조상을 봤는데 이들은 붙어다니며 현자, 치유사, 영적 스승에게만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 여느 기자처럼 이 말을 심리적 트릭 같은 것으로 이해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로 내 할머니들과 증조 할머니들이 치유사였고 더 오래된 조상은 성상화 화가였다는 점을 생각했다.

샤먼 마르크 구슬랴코프. [본인 제공]

 마르크는 기자와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인터넷 사이트도 운영하지 않는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때 처음 샤먼 입문 의례를 받았다. 자기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았고, 다만 이 길은 스스로 택한 길이 아니며 없애거나 지워버릴 수 없는 능력을 타고났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작곡하는 등 이런저런 능력이 있다. 나는 피부색, 몸과 발가락을 보고 그에게 어떤 만성 질환이 있는지, 조상이 어디 살았는지 하는 것들을 알아낼 수 있다. 배울 필요도 없다. 내 조상은 모두 치유사와 사제였고, 심지어 ‘구슬랴크’라는 내 성도 마법사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하루 한 번 경련이 일어나 15~20분간 꼼짝 못하는데, 이 상태에선 현실이 변해버리기 때문에 돌아오려면 비현실적인 힘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직 많다.

샤먼이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마르크는 “절실히 도움이 필요하면 스스로 찾아낸다”고 한다. 2014년 여름 투바공화국(남시베리아)에서 열린 ‘13인 샤먼의 부름 ’ 페스티벌이 그걸 보여준다. 이 페스티벌은 영적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축제였다. 마르크는 선정된 13인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소개하는 장면은 이렇다.

 멕시코, 그린란드, 몽골과 한국의 무당과 샤먼이 초대됐고 그들을 보려고 지역 주민들이 줄을 섰다. “사람들은 줄 돈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거부할 수는 없었다”고 마르크의 동료 율리야가 말한다. 사람들은 음식, 50루블(1.5 달러), 이런저런 물건 등 놓고 갔다. 그러곤 다음 날 인생이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낀다며 감사의 전화를 해왔다.

 샤먼 소집자는 투바공화국의 샤먼 니콜라이 오오르자크였다. 13인의 임무는 위대한 영으로부터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알아내고, 전 세계의 샤먼들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영적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이 서로 적대시하며 다른 이의 전통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페스티벌은 진정한 기적의 현장이었다. 참가자들은 산에 묵어야 했는데, 그곳은 더위가 40~50도 기승을 부려 지역 주민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곳이었다. 샤먼들은 3일 수행 일정으로 등반을 하면서 많은 이들은 마실 물조차 없이 올라갔다.

 모두 목말라 할 때 몽골 샤먼이 의식을 거행했다. 그는 그릇을 꺼내 나눠주더니 “모두에게 충분할 것 같다”고 말했다. 탬버린을 두드리며 의식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3분 후 큰 비가 내렸다. 옷이 다 젖고 그릇은 물로 가득찼다. 마르크는 “이는 진정한 고대의 지식, 샤머니즘의 발현”이라고 말한다.

 율리야는 러시아 샤먼들의 사는 형편이 매우 어렵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아무도 샤먼들을 지원해 주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는 국가에 의해 보호받고 있고 심지어 유네스코도 문화재로 보호하고 있다. 러시아에는 투바 샤먼들의 대통령 몬구시 케닌-롭산만 보호받는다”며 “샤먼들이 힘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갈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그들이 치유를 행한다는 건 사회를 정화시키고 더 좋게 만들기 위해 힘을 사용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마르크와 이런 얘기를 더 나눴다.

 -샤먼이 사는 형편은 어떤가.

 “러시아 진짜 샤먼은 대개 가난하며 여행할 여력이 없다. 모스크바에 치료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많은데 대부분 시베리아 출신이고 주로 도시 근교에 자리를 잡으려고 노력한다.”

 -언론에 뜨는 샤먼도 많다.

 “대중매체와 인터뷰하고 신문에 글을 기고하며, 블로그를 운영하고 노래 콘서트를 여는 샤먼들은 그저 기적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다. 샤먼의 진실한 지식은 스승에서 제자에게 비밀리에 전수되는 것으로 그것은 책을 쓰고 영화를 찍을 수 없는 대상이다”

 -샤먼이 되는 이들은 특별한가.

 “샤머니즘은 인간의 유전자에 내재돼 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의식복과 제의불꽃, 음유 노래와 기도 없이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은 몸안에 들어 있다. 예전에는 샤먼들을 오직 눈빛과 핏줄의 무늬 등 신체적 특성에 의해서만 규정했지만 이런 관습은 이제 사라졌다. 그럼에도 누구든 자신의 앞에 있는 샤먼이 진짜인지 아닌지 느낄 수 있다.”

 -그럼 아무나 된다는 건가.

 “자신의 ‘진정한 재능’에 따라 행하는 모든 일을 원칙적으로 샤머니즘이라 부를 수 있다. 샤머니즘이란 우주가 준 예술적 재능이다. 이 재능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다. 샤머니즘은 책으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겐 7개의 감각이 있는데 익숙한 오감 말고도 투시력과 예지력이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 두 감각을 억누르고 있다. 우리 조상은 인터넷과 전화 대신 이 능력들을 사용했다. 그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서로를 느끼고 이해했다.”

 저녁에, 녹음한 내용을 정리한 컴퓨터 화면의 글을 보고 있자니 샤먼이 의도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도 있어 보인다. 그의 말들을 다시 정리한 것은 그림들이 가득한 작은 공간에서 내가 느낀 것들이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진짜 샤먼이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정확하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우리가 또 다른 평행세계 및 아주 특별한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마르크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생각뿐이다.

◆샤먼(shaman)=퉁구스어로 망아(忘我)상태에서 계시 같은 것을 얻는 종교적 능력자를 일컫는 ‘사만(saman)’에서 유래한 말. 샤먼은 수호령이나 수호신으로부터 힘을 받아 예언, 질병의 치료, 꿈의 해석, 악령이나 적으로부터 집단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마리나 오브라스코바

제작 담당 러시아: 엘레나 김 에디터
한국: 안성규 게스트·서브 에디터
russiafocus.co.kr editor@russiafocus.co.kr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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