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친구 따라 강남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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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K고교2년 김모군(17)은 어느 날 여관에서 여자친구와 투숙했다가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렸다.
여러 가지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순경이 머리에서 가발을 벗겨 내렸을 땐 학생신분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퇴학을 당했다.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와 교문을 걸어 나설 때 어젯밤의 신나던 디스코클럽이 떠올랐고 『하루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한달 전 중학동창을 따라 디스코클럽을 기웃거렸을 때 이미 변하기 시작했던 것.
최근 K여중은 교장과 교도·학생주임·담임 4명의 교사가 생활지도위원회를 열고 2학년 박모양(15)을 무기정학 처분했다. 이유는 상습절도.

<가발 쓰고 여관출입>
박양은 중학교 1학년 때 이웃에 사는 국민학교 동창과 시내 모 백화점에 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어떤 점포에 들어가더니 물건을 하나 훔쳐와 자랑했다.
『너도 해보렴, 어렵지않아….』
박양은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은근히 샘도 나던 터라 그대로 뒤따랐다. 성공하고 나니 야릇한 쾌감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훔치고 또 훔쳤다.
부모와 교사·친구, 10대에게 있어 가장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라면 흔히들 이 셋을 꼽는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이 삼각관계 속에서 항상 형평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나 교사는 자신들과 다른 세대라는 감각에서, 또는 개방사회로의 이행에 따라 가정과 학교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10대들은 「말이 통하는」친구에게 가장 친밀감을 느낀다.
최근 청소년문제전문가 황석근씨가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는「자신의 고민을 의논할 대상」으로 누구를 꼽느냐는 질문에 부모(21%)나 교사(8%)에 앞서 친구(43%)가 압도적. 또 청소년들은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66%가 가정과 학교보다는 친구와의 생활이 즐겁다고 답했다.
이대 김인회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친구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는데 81.3%의 청소년들이 부정적. 또 학교나 사회에서 나쁜 아이로 취급되는 아이들은 대개 친구로서도 나쁜 아이다라는 질문에는 52.8%가「안 그렇다」는 쪽을 선택해 친구에 대한 평가기준이 기성사회인의 시각과는 다름을 보여줬다.
D여고 홍모교사는『친구란 정서적 안정뿐만 아니라 인격형성에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친구를 좋아하는 청소년의 태도에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최근 고2학년 한 학급의 교우관계 조사에서 느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조사결과 65명의 학생 중 10명 이상의 친구를 가진 학생은 다섯 명뿐 반수이상이 2∼3명의 친구만을 갖고 있었다. 또 교우의 범위도 같은 학교학생이 대부분, 중학교 동창이나 동네친구를 가진 학생도 적었고 클럽이나 다른 활동으로 학교 이외의 친구를 사귄 예는 드물었다. 홍교사는 『청소년들이 친구에게 거는 기대는 크지만 교우관계의 범위가 좁으니 얻는 것은 극히 적을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서울대 차경수교수 (교육학)는 청소년의 교우관계는『그들이 독립된 자아의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친구사이에 주고받는 영향이 크며 또 타산적이 아니기 때문에 결속력이 강하다는 것』 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특성이라고 말하고 이 때문에 그들 사회에서는『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식으로 쉽게 비행을 저지르기도 하며 외곬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고 지적했다.
차교수는 그러나 문제는 부모나 학교가 교우문제를 지도해주기보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친구관계를 가능하면 차단하는데 있다고 밝히고 『사회가 개방사회로 계속 이행되고 10대들이라도 언제까지나 보호망 속에 둘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보다 넓은 교우관계를 장려해 스스로 모든 것을 취사선택할 수 있도록 건전한 판단력을 길러주는 아량이 아쉽다』고 말했다.

<건전한 판단력 절실>
한 상담교사와 한 학생은 현실로 드러난 교우관계의 문제를 이렇게 표현했다.
K고교 김모교사-『학교는 진학지도에 바빠 학생들을 공부에, 부모들은 안심이 되지 않아 자녀들을 집안에 묶어두려고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서울H고교3년 최모군-『친구가 중학교 동창까지 합쳐 7∼8명은 됩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의 다른 세계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길거리에 가다가도 구두닦이를 보면 대화를 가져봤으면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고3이 되니까 공부에 지장이 있다며 친한 친구가 집에 오는 것도 꺼려요]<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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