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짜증나는 '수중전 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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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문학구장. 삼성 이승엽은 8회초 우전안타로 출루한 뒤 브리또의 2루땅볼 때 2루에 꼿꼿이 서서 들어갔다.

병살플레이를 막기 위해서는 당연히 슬라이딩을 해야 했지만 흠뻑 젖은 그라운드에 몸을 던질 용기가 없어 보였다.

이후 9회초 삼성의 양준혁은 진갑용의 좌전안타 때 1루에서 3루까지 내달았다.

SK 좌익수 조원우는 젖은 그라운드에서 볼을 안전하게 잡느라 힘있게 대시하지 못했다. 양준혁의 허슬은 단연 돋보였다. 슬라이딩을 마친 양준혁의 유니폼과 얼굴은 흙탕물 범벅이 됐다.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였다.

잠실구장. 두산과 현대의 더블헤더 2차전 7회초 1사 1루에서 프랭클린의 투수앞 땅볼을 잡은 두산 투수 차명주는 미끄러워 균형을 잡지 못하고 1루수 쿨바의 키를 훌쩍 넘게 송구했다.

2루수 안경현이 이 공을 줍는 순간, 1루를 돌던 프랭클린이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런다운에 걸린 프랭클린을 태그하기 위해 안경현이 쫓아가자 3루주자 박종호는 슬금슬금 홈으로 뛰어들었다.

공을 쥔 안경현이 프랭클린을 포기하고 홈으로 송구하는 순간, 몸의 균형을 잃고 홈에 원바운드로 송구하고 말았다. 주자들은 모두 세이프됐다. 프로야구가 아닌 동네야구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 낮은 플레이였다.

광주구장도 비 때문에 세번이나 경기가 중단됐다 재개됐다 하면서 선수들이 감각을 잃었고 관중은 짜증을 냈다.

돔구장의 필요성을 말하기 전에 경기 관계자들을 탓하고 싶다.

야구규칙 3조10(C)항 원주(原註)에는 분명히 '주심은 어떠한 경우에도 경기를 완료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 조항에 얽매여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경기 진행을 고집한다면 선수들은 졸전에다 부상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팬들의 실망은 커질 것이다.

이태일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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