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6)<제73화>경제시장(24)|증권업계에 첫발|강성진(제자=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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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의 증권사를 놓고 볼 때 일제 때의 미두시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약86년에 이른다. 또 유가증권이 이 땅에서 처음으로 매매되었던 1910년부터 치면 70년 정도로 볼 수 있다.
오늘날의 한국증권시장에 보다 가까운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1947년의「증권구락부」시절부터 쳐서 34년 정도로 어림할 수도 있다.
나는 증권시장 제도가 재대로 틀이 잡히지 않은 채 각종 혼란과 파동으로 얼룩진 50년대 후반에 증권회사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기간을 증권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증권계의 대소사를 직접 경험도 하고 보고 듣게되었다.
한때는 남달리 많은 어려움도 겪었기에 그만큼 증권에 대한 애착도 많다. 한국의 증권계는 숱한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앞으로 크게 발전할 것으로 믿는다.
내가 증권업계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57년이다.
동아건설사장이던 최준문씨(현 동아그룹 명예회장)가 강일매씨(당시 동아백화점과 조선방적의 소유주)로부터 인수한 여일증권(인수 후 동명증권으로 상호가 바뀜)의 상무자리를 맡으면서부터다.
그때 나는 동아건설의 경리부장으로 있었는데, 최 사장의 권유에 따라 내 평생의 활동무대가 될 증권업계에 발을 들여 놓게된 것이다.
내가 증권을 조금이나마 알게된 과정의 실명이 되겠기에 그때까지의 내 얘기를 좀 해야되겠다.
대학을 졸업한 후 농협의 전신인 금융조합에서 3년 간 근무하던 중 이광우씨(당시 동아건설1무)의 추천으로 동아건설 경리과장으로 옮겼다. 요즘 말로 스카우트된 셈이다.
얼마 후 경리부장으로 승진되었는데, 하루는 최 사장이『강 부장은 증권에 대해서 모르지 지금 자금사정도 괜찮을텐데 그대로 눌려두느니 증권을 한번 사보면 어때』하고 말을 건넸다.
순간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증권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순간이 나의 인생행로를 뒤바꿔놓는 것 인줄은 몰랐다. 사람의 운명은 신만이 안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때부터 내 평생 직업이 될 증권업계에 한발 한발 다가서게 된 것이다.
여유자금은 충분한 것 같았다. 나는 정화증권이란 회사를 찾았다.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었다. 이창후 전무를 붙잡고 증권을 샀으면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국체를 사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내 돈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거액의 증권을 사고나니 전부터 증권에 대해서 제법 아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때 샀던 국채는 수익성이 좋았다. 아마도 35∼40%에 가까운 높은 수익을 얻었던 것 같다.
이렇게 되자 본업인 회사경리보다 증권투자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회사는 여유자금의 계속적인 활용으로 과외수입을 늘려나갔다. 이렇게 거액의 매매가 빈번해지면서 위탁수수료가 막대한 금액에 달하게되자 수수료를 줄이기 위해 흥일증권이란 회사를 인수해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외도 한번 없이「증권」속에서 증권과 함께 지내오게 됐다.
동명증권 사장은 최준문씨였으나 회사경영은 상무로 있는 내가 책임지고 꾸려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 고객으로서「나만의 이익」을 추구하던 입장에서「남의 이익」을 생각해 주어야하는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고객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많은 이익을 안겨 주어야했다.
증권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고 증권매매거래의 기법을 알아야만 했다.
나는 밤잠을 설쳐가며 열심히 책장을 넘겼다. 또 낮에는 부지런히 뛰었다.
덕분에 나는 얼마 가지 않아 동명증권을 거래실적 제1위로 끌어올려 놓았다.
나는 이때 해방 후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초창기에 상담한 영향력을 발휘한 윤응상씨를 안명수를 통해 알게 됐다.
윤씨는 나의 젊은 패기를 높이 샀음인지 곧 동명의 큰 고객이 되어주었다.
그는 연일 거액의「사자」주문을 해주었다. 기실 속명이 거래실적 1위를 차지하는데도 그의 덕이 컸다.
이러한 거래 성과는 곧 회사수익으로 나타났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연간 2억∼3억권 정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당시의 회사 자본금이 5천만권 정도였으니 그 이익규모가 어느 정도였던가는 가히 짐작될 것이다.
사회에 나와서 처음으로 내 책임 하에 회사를 경영하여 이처럼 엄청난 이익을 올린데 대하여 약관의 나로서는 우쭐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좋게만 될 수는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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