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산파동... 그후 2년|14개 기업 8천여명 거의 공중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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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꼭 2년전, 율산의 도산은 정말 산 하나가 삽시간에 무너져 내리는 충격이었다. 14개의 계열기업과 8천여명의 직원들이 공중분해 되었고 사장 신선호씨와 홍태섭 서울신탁은행장의 구속을 비롯해 10개은행장이 무더기 경질되는등 기업도산이 몰고온 최대의 파동이었다. 벌써 율산이라는 이름조차 세간의 관심에서 거의 잊혀져가고 있으나 도산 그후는 어찌되었는지가 궁금하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입구에 위치한 구 율산빌딩. 채권자인 서울신탁은행 손에 넘어간지 오래지만 이 건물 10층 꼭대기에는 아직도 부완혁 학장을 비롯한 50여명의 골수직원들이 율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출퇴근 때나 바깥일을 보려면 10층 계단을 오르내려야한다. 새 건물 주인인 은행측이 인수직후 전기 값을 이유로 엘리베이터 가동을 중단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임대료도 못 낸채 눌러 앉아있는 형편이니 불평할 처지도 못된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융성을 누렸던 그들이 이제는 아무도 다니지 앓는 10층계만을 가쁜 숨을 물아 쉬며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14개 기업들 중에서 현재 남아있는 회사는 율산산업·율산건설·율산엔지니어링·경흥물산·서울종합터미널 등 5개사. 이중 서울종합터미널만이 실질적인·영업을 하고있고 나머지 의사들은 간판만 남아있을 뿐이다.
「터미널」의경우 영동선과 호남선의 매표수수료와 임대료등 월8천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데 이 돈으로「터미널」직원 1백50명의 급료와 실업·건설등 벌이가 없는 50여명 직원의 생계유지비 정도를 지원해 주고있는 것이다.
부도당시 율산의 은행부채는 지급보증을 합쳐 모두 1천3백억원. 이것저것 값나가는 것을 팔아치웠으나 아직도 5백억원의 은행 빚이 남아있다.
율산중공과 율산알루미늄을 4백억원을 받고 효성에 율산해운은 3백억원을 받고 범양전용선에 각각 팔아 넘겼고, 븐사 건물은 살 사람이 없어 결국 은행측이 60억원에 떠 안았다.
아직도 안 팔리고 있는 것이2만평부지의 서울종합터미널이다. 은행측은 2백억원 정도를 목표로 여러차례 경매를 실시했으나 원매자가 없어 율산이 그대로 경영을 맡고있는 것이다.
율산 측으로서는 살아서 움직이는 유일한 젖줄이라는 점과 부동산으로 싸게 파느니 보다 본 건물을 지으면 훨씬 비싸게 팔수 있었다는 점들을 들어「터미널」매각을 반대하고 있으나 『빚진 죄인』 이라 결국 은행눈치만 살피고 있다.
은행측도 그 동안의 여러 차례 유찰에 지친데다 팔린다고 해도 양도소득세 때문에 별 실속이 없어서인지 당분간은 두고보겠다는 태도다.
율산건설이 중동에서 벌여놓았던 5개 해외공사는 거의 마무리되었으나 갑작스런 도산으로 공사비용은 엄청나게 불어났었다.
5개의 건설회사가 떠맡았으나 S건설의 경우 율산이 그냥 계속했으면 3백만 달러면 충분했을 것이 1천만달러 이상이 들었다는 것이다.
신선호씨의 나이는 만35세. 고등법원에서 5년 선고를 받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인 그는 병보석으로 자택에서 요양중이다. 외부출입을 일체 끊은 채 말을 잃었다는 게 측근의 전언이다.
그러나 형태조차 희미해진 잔존 율산인들의 그에 대한 향수는 아직도 대단하다.
지금까지 버티어 온 것도 율산을 재건시키겠다기 보다는 은행 빚을 갚아 「보스」신씨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자는 노력이라고 한 관계자는 설명한다.
만약 5백억원 상당의 빚을 갚지 못해 은행의 결손으로 처리될 경우 사업가로서의 신씨는 금치산자로서 영원히 매장되기 때문이다고 신씨의 장인이기도한 부완혁 회장은 일요일에도 출근, 정부나 관계기관에 제출할 진정서와 각종 소송 준비자료룰 매만진다.
그 동안 10여 차례의 송사에서 매번 지기를 계속해 왔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집념이다.
율산측의 과오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 벌은 너무 가혹했다는 주장이다. 지금도 서울종합터미널의 뒷마당에 가면 수십대의 승용차가 녹슬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갑작스런 도산으로 압류된 자동차들을 제대로 처분하지 못해 썩고 있는 것이다.
일을 저지른 기업이나 돈줄을 끊은 은행이나 징발한 정부나 모두가 처음 당하는 일에 당황했고 그 결과가 이 같은 부의 사장을 초래한 것이다.
『아마 신사장도 많은 것을 배웠을 겁니다. 만약 그가 다시 사업을 하게된다면 다시는 경륜이 짧다는 것이 그의 약점으로 입에 오르내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골수 울산인은 부도의 교훈은 정말 대단한 것 이였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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