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난중일기』는 언제쯤 온라인으로 볼 수 있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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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호 24면

지난 칼럼에서 출판계의 인문학 열풍의 허구를 이야기하면서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철학·문학·예술사를 한 권에 밀어 넣은 상식백과식 참고서를 읽느니 차라리 정식 백과사전을 읽는 게 낫다고 썼었다. 그러자 요즘도 백과사전 종이책을 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전진하라! 한국 고전 DB

나올 만한 질문이다. 백과사전의 대명사인 브리태니커도 2012년 종이책 출판 종료를 선언하고 유료 온라인 버전만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두산백과사전 역시 종이책 출판이 중단되고 이제 두피디아 웹사이트와 포털 등에서 무료 디지털 정보로 공급된다. 그런데 종이책 대신 이런 디지털 버전으로 읽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종이책으로 읽든, 온라인 텍스트를 컴퓨터 모니터로 읽든, 전자책을 태블릿 PC나 스마트폰으로 읽든, 결국 중요한 것은 매체가 아니라 콘텐트다.

나는 여러 서구 고전을 온라인 텍스트로 읽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메타모르포세이스』(변신담:그리스·로마 신화의 집대성)의 경우, 어릴 때 국문 번역 종이책도 읽었지만, 나중에 영문 완역본을 온라인에서 읽었다.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 구텐베르그’나 미국 MIT 등 여러 대학의 고전 아카이브에서 그 완역본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 역시,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이 운영하는 ‘폴저 디지털 텍스트’ 등 여러 사이트에서, 무료로 희곡 전문을 막과 장 별로 쉽게 검색해서 볼 수 있다. 어떤 사이트는 상세한 주석까지 제공한다.

서구의 주요 인문학 고전은 이미 10여 년 전에 검색했을 때도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잘 돼 있는 상태였다. 당시에 그걸 보고 감탄하면서 한국의 고전을 온라인에서 보기 힘든 것을 아쉬워했었다. “한국이 IT강국이라지만 디지털 콘텐츠 면에서는 전혀 강국이 아니다”는 여러 전문가들의 지적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

한국고전종합DB 웹사이트

요즘은 좀 나아졌다. 교육부 산하 한국고전번역원이 운영하는 한국고전종합DB(사진)에서 『조선왕조실록』의 한글 완역본을 각 임금과 날짜 별로 검색해서 읽을 수 있고, 또 정약용의 『경세유표』,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 여러 고전의 한문 원본과 한글 완역본을 무료로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 요즘 영화 ‘명량’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난중일기』 한글 완역본의 명량해전 부분을 온라인에서 찾는 학생들을 많이 본다. 그러나 『난중일기』 한글 완역본은 아직 한국고전종합DB에 올라와 있지 않다(한문 원본은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한문희 실장은 “시중에 종이책으로 나온 『난중일기』 완역본을 올리고자 하는 계획은 있지만, 먼저 번역자에게 충분한 저작권료를 지급할 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해방 이후에 한글로 번역된 한문 고전문헌이 4900여 권인데, 이중 27%인 1300여 권이 현재 한국고전종합DB에서 제공된다. 이 비율을 50~70%까지 끌어올리고자 하는데 결국 저작권료로 쓰일 예산이 문제라는 것이다.

‘명량’을 보고 『난중일기』 완역본을 읽는 것처럼, 허구가 섞인 사극 영화와 사료가 되는 고전문헌을 비교하는 것은 훌륭한 역사 공부 방법이다. 이때 종이책으로 읽는 것도 좋지만, 실록이나 일기 양식의 방대한 고전문헌은 일단 궁금한 부분을 발췌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효과적이다. 그 경우 온라인 DB가 훨씬 편리하다. 게다가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리는 지금의 청소년과 대학생 세대가 한국 문화 정체성의 뿌리인 고전문헌과 쉽게 친해지도록 하는 길은 무료 디지털 정보로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정부가 잘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이다. 예산을 투입해 고전의 연구번역자에게 충분한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무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 말이다.

더구나 저작권료뿐만 아니라 연구 인력 양성도 문제다. 한 실장에 따르면 “한문학 고전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인력은 현재 한국에 200여 명 정도”에 불과하다. 진정한 문화융성을 위해서는, 여러 한류 홍보 프로그램도 좋으나, 이런 가장 근간이 되는 문화사업부터 예산이 확충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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