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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8)|제72화 비관격의 떠돌이 인생 <제자=필자>(56)|막혀버린 귀국길|김소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동경으로 들어오자 제일 먼저 나는 「후나다 교오지」씨 댁으로 갔다. 전 경성제대 교수이던 그분 댁이 내 연락 장소였다. 가족들에게서 온 편지며 신문 몇장이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문을 펴들자 초호·1호로 찍은 4, 5단 대제의 기사가 눈에 튀어들어 왔다.
「김소운씨의 비국민적 망언 문제화」「장혁주·김소운등 반민족 작가 철저 규탄-공보처장담화」-, 이런 글자들이다.
그것이 누구를 가리킨 말인지 갑자기는 판단이 안될 정도로 나는 아연했다.
「비국민」「반민족-」, 이게 나란 말인가-, 망할 자식들-, 소견 없는 녀석들-, 분노가 가슴에 치밀어 올랐다.
나는 황망히 「후나다」씨 댁을 나왔다. 전전 20여년을 살았던 동경 거리-, 그러나 아무 것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길을 걸으면서도 인도양 위에 선 것처럼 땅이 흔들린다. 치밀어 오르던 분노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슬픔으로 변해갔다. 입으로는 뭐라고 형언키 어려운-, 나는 그날의 내 심정을 『여편네를 도둑맞은 놈의 심사. -그렇게나 절명할 것인가?』하고, 뒷날 서울서 온 어느 친구에게 말한 일이 있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내가지은 동래 고교의 교가-, 김동진씨가 작곡한 그 노래를 나는 「베니스」에서, 「로마」에서, 「파리」에서, 마음이 허탈하고 외로울 때면 혼자 불렀다 (지금은 그 교가가 바뀌어졌다는 얘기지만-).
우렁차게 노래부르자, 젊은 피에 뛰노는 가슴
양양하다 우리의 앞길, 샘솟는 우리의 희망-
잊을 소냐 청운의 뜻을, 저 하늘에 아로새긴 맹세를
우리들은 조국의 아들, 새 역사의 창조자로세
망월대 아래 모인 우리 학우, 시연에 이겨서
젊은 학도들의 사기를 고무하려는 가사인데도 웬 까닭인지 이 노래만 부르면 마음이 서러워진다. 그려나 「로마」도 「파리」도 아닌 동경 거리를 거닐면서 그날 나는 50번도 더 이 노래를 부른 것 같다.
일망무애의 얼음장 위에 혼자선 것 같은 외로움이 가슴에 서렸다. 『어떤 원수도 두렵지 않으나 내 가슴속에 엉켜 있는 이 비애가 무섭다』고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그렇게 썼던 것을 기억한다.
부산을 떠나기 2, 3개월 전 어느 교포 신문에 5, 6단 「톱」기사로 「친일 작가 장혁주 체포 송환-」이란 서술이 시퍼런 제목을 본 일이 있다. 그후 동경으로 와서 나흘 묵는 동안 그 신문사 특파원을 우연히 대표부에서 만나 『꽤 그런 되지도 않을 기사를 실었소. 누가 체포를 하고 누가 송환을 한단 말이오. 괜히 그런 허장성세만 말고 제2, 제3의 장혁주나 만들지 말라고 하시오』하고 나무란 일이 있다. 친일 작가와 내가 어깨를 겨루게될 줄이야.-
다른건 다 덮어두고 잊어버린다고 하자. 그러나 「장혁주, 김소운」을 한데 묶어서 도매금으로 내놓은 그 「공보 처장 담화」라는 것만은 용서치 못하리라. -슬픔이 엉킨 가슴에 또다시 분노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돌아 갈래야 돌아갈 수 없는 조국-, 겉잡지 못할 울적한 심정에 때로는 「하네다」 공항으로 나가 혼자 송영대에 서서 한국으로 떠나는 여객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돌아오기도 한다.
「아프리카」 보다도 더 먼 내 조국-, 상가구처럼 처량했던 그 무렵, 동경서 「코즈머폴리턴」두란 출판사가 내게 책 한권 쓰기를 권해왔다.
유명한 「킨제이 보고」의 일본판을 낸 출판사로 일본으로 귀화한 교포 출신의 「히가시야마」 (동산) 모가 사장이다.
「코즈머폴리턴」이란 사명이 말하듯이 그는 정신적인 무국적자였다.
책 이름이 『나는 조국을 버렸다』-승낙만 하면 선금이 얼마, 일문 출판 외에 영문 주간지에도 그 일부를 역재 하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그 영문 주간지의 동경 지사장도 나를 만나기를 원한다고 했다.
「히가시야마」는 내 책을 10만부는 찍을 자신이 있다고 호언했다. 일본의 일유 출판사와 경합해서 「킨제이보고」의 편역권을 독점한 수완으로 미루어 그만한 자신은 가짐직도 했다.-그말대로라면 그 책 한권에서 얻는 수입은 내가 몇햇 동안 먹고 쓰고 남을만한 보수 조건이었다.
내게 비국민이란 낙인을 찍은 내 조국에 비애와 환멸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주일 대표부의 공사 유태하는 주불 일본 대사관에서 내어준 내 일본 체류 「비자」와 여권을 교묘한 술책으로 빼앗고, 내게 빨갱이의 올가미를 씌워서 조국으로 돌아갈 길을 가로막았다. 내 자신이 「드레퓌스」는 아니었지만 내 조국에는 나를 변소해 줄 「졸라」는 없었다.
「나는 조국을 버렸다」-그럴 수만 있다면 오죽이나 속시원하리! 오죽이나 통쾌하리! 그러나 내 조국과 유태하의 조국이 같은 조국일망정 같은 내용일수는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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