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보느라 아내 임종도 못 봐 … " 일 하며 공부 … 2년 만에 학사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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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 기술수석차장인 백승학(54·사진)씨는 몇 일 전 학사모를 썼다. 1978년 고교를 졸업한 지 36년 만이다. 그는 학위증을 받자마자 아내가 잠든 납골당부터 찾았다. 백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부하긴 버겁다. 그런데 아내가 ‘아이들도 다 컸으니 못다한 공부를 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해 대학의 문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일하면서 2년 만에 학사학위를 딸 수 있는 과정이다. 하지만 정식 대학생이 돼 들뜬 그와 달리 아내는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결국 지난해 6월 세상을 떴다. 기말시험을 치르느라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아내가 “면회오지 말고 공부하라”고 만류해서다. 그런 아내의 뜻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 백씨는 졸업과 함께 500만원을 장학금으로 내놨다. 일하며 공부하는 직장인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전국의 모든 아내를 위해서다.

 백씨는 학사모를 쓰기 전인 2012년 고용노동부가 선정하는 산업현장교수로 뽑혔다. 그는 기계조립 부문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2011년)될 정도로 이 부문에선 독보적인 기술인이다. 학생이 되면서 그는 강의도 하고, 공부도 하며, 일터의 직장인으로, 가정의 가장으로 1인 4역을 소화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일터에서 익힌 기술로 발전기 터빈 조립과 관련된 특허를 2건 출원했다. 그가 졸업논문 대신 수행한 과제는 발전기 터빈의 커버 교체. 이 과제는 회사에 연간 40억원의 비용 절감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9월부터는 경남대 기계공학과 석사과정에서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한 발을 뗀다.

 2012년 처음 도입된 전문대 학위전공심화과정의 첫 졸업생이 한국폴리텍대학에서 배출됐다. 서울정수·창원·인천캠퍼스에 재학하던 104명이다. 이들은 2년 만에 4년제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모두 직장인이다. 1년 이상 산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 입학할 수 있어서다. 졸업을 하는데 논문은 필요 없다. 대신 산업현장의 문제를 다룬 까다로운 프로젝트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 졸업자 중 두 명은 전국에 세 명 밖에 없었던 메카트로닉스 기사에 합격했다. 기능장 자격을 취득한 사람도 11명이다. S&T중공업의 김현근(47)씨는 산업현장교수로 졸업과 동시에 폴리텍대학 강단에 선다. 두산중공업 최민기(28)씨는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폴리텍대 박종구 이사장은 “학위전공심화과정은 직장인에겐 경력사다리를, 회사에는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최적의 과정”이라며 “일과 학습 병행의 새로운 모델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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