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재미없기 때문에 관객이 안 온다-여수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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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영화는 지금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이 현상은 결코 일시적인 것도 우연한 것도 아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기에 더욱 심각한 것이다. 기어이 올 것이 왔다는 자괴를 나는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갖게된다. 왜냐하면 불황이란 필경 한국영화가 관객으로부터 외면 당했다는 사실이며 그것은 영화인이 영화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 대한 자기성찰이 근본적인 문제로 제기되지 않고서는 불황타개의 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컬러」TV의 방영이 한국영화가 직면한 불황의 원흉이 아닌 것이다.
한국영화가 그 동안에 병든 그 병리에 대한 자기성찰을 우리는 망각했고 그 병리의 진단과 진료에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한 노력 없이 한국영화의 회생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한국영화에 대한 세 가지 자기 성찰을 여기서 제언하고자한다.
먼저 직접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의 자기성찰은 무엇보다 「재미없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서 발상되어야 할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볼만한 영화를 만들지 못한 책임이 영화인에게는 있다고 영화관을 찾는 관객에게 영화적인 재미를 듬뿍 안겨주는 영화, 입장료가 조금도 아깝지 않은 영화를 우리 영화인들은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영화기획의 빈곤, 제작여건, 낙후된 기계, 그리고 지나친 검열의 규제 등 영화가 재미없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원인과 이유가 거기에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 「테크놀러지」에 관한 것이다. 영화를 어떻게 재미있게 만드느냐하는 기량, 즉 「영화기본」에 대한 자기연마를 게을리 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우리 영화인은 너무나 영화를 쉽게 만들고 있다. 과거에 한 사람의 장인의식에 철저한 완전주의자가 없었다는 사실이 어쩌면 오늘날 한국영화를 불행하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철저한 장인의식은 창조의 원천이 된다. 한국영화는 그것이 고갈되고 있다. 영화창조에 대한 겸허한 자세, 탐구적인 노력, 「히치코크」나 「구로자와」같은 영화「테그놀러지」에 관한 끊임없는 추구가 우리 영화인에게 절실히 요망된다고 불황에 허덕이는 한국영화는 어쨋든 재미있고 신나고 TV따위는 어림없는 「파워」를 화면에 담아 관객을 사로잡아야할 것이다.
다음으로 영화제작자에게 「윤리적」인 자기성찰을 바라고 싶다. 과연 그들이 한국영화와 그 영화제작에 애정과 정열을 쏟고있는가 묻고싶다. 바꿔 말하면 자기 기업에 대한 소신과 전력을 다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다. 제작자는 두말할 것 없이 영화제작에 투자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다. 그들에게 문화적인 「양식」을 바라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영화의 불황과 불행은 그들이 지니고 있어야 할 그 문화적 양식을 갖고 있지 않거나 있어도 부족한데서 비롯된다. 「로마」로 가는 길은 따로 없는 것이다. 외화수입 「쿼터」를 따내기 위한 요식행위로서의 영화제작, 그러한 의식구조와 자세에서의 시급한 탈피만이 제작자 자신들을 살리고 또 한국영화를 회생시키는 것이 된다고
다음에 나는 영화정책을 수립하는 당국의 자기성찰을 요구하고 싶다. 문화 후진국일수록 소위 문화정책은 문화발전을 크게 좌우하는 법이다. 영화에 관해서 말하면 우리는 후진권에 속한다. 「아시아」권에서도 제일 밑바닥에 있는 것이 바로 한국 영화인 것이다.
한국영화는 지금 영화의 근본적인 정책전환이 없는 한 다시는 회생할 수 없는 지점에 와있다. 73년에 제정된 영화 법에 의한 기존 정책의 테두리 안에서는 이제 한국영화의 발전이나 불황극복의 길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당국은 조속히 전문가에 의한 자문위구성, 한국영화 백서의 각성, 혁신적인 영화정책의 수립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또 한국영화를 고식적인 검열의 멍에에서 벗어나게 해야한다.
작가의 「자기검열」이 아닌, 창작의욕을 위축시키는 검열운영에서는 영화예술의 풍요한 개화란 바랄 수 없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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