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 기좀 펴게 달라|연대 철학과 4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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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사은회 주무를 맡게됐다.
초·중·고·대 16년의 학창생활을 마무리짓고 사회에 나선다. 누구나 일생에 한번뿐인 벅찬 감회이리라. 그립고 아쉽고 가슴 설레는「졸업」-.
모임을 추진하면서 뜻밖의 벽에 부닥쳤다.
『××과는 1인당 회비 3천원을 거뒀는데 다들 한복을 차려입느라 10만원이 넘게 들었다.』
『교수님들과는 간단히 저녁만 나누고 자기들끼리 어울려 2차 3차까지 돌며 이것저것 다했다더라.』
『사은회라고 나가보니 학생이 교수보다 더 적었다』
사은회를 둘러싼 안팎의 뒷공론들』, 다분히 비판적이고 냉소적이었다.
과우들 가운데도 뜻밖에『별 흥미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불참하겠다』는 친구들의 마음을 겨우 돌려놓고 나니 이번엔 교수님.
정중한 초대에『「호텔」같은덴 안 간다』고 지레 잘랐다.
물론 교수님의 걱정은 기우였다. 애당초 장소를 학교 앞 평소 잘 가던 불고기 집으로 골랐으니까.
그러나 마음 한 귀퉁이가 허전했다. 사은회, 특히 대학 졸업생들의 사은회라는게 뭘까.
물론 마음이 첫째일 것이다. 4년간 학문과 지성과 덕성을 닦아 온 상아탑의 스승과 제자사이에 헤어지는 마당에 애틋한 정이 없었다면 아무리 거창한 사은회를 벌인다 할지라도 가면 무도회 아닌가.
하나의 의례적인 행사로 전락해버린 요즘의 사은회는「스승」도「제자」도 없는 대학교육의 반영같아 아쉽고 서글프고 분노마저 느낀다. 「대학생다운」모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장소·비용·진행방법에서 어디까지나 학생의 분에 맞아야 한다는데는 반대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학창생활의 전과정을 매듭짓는 대학졸업반의 마지막「의식」이라는데 조금은 유념해 주길 바라고 싶다. 『공부하라』는 것 말고는 모두『말라』는 것뿐인 사회분위기 속에 한 학기도 마음 편하게 수업을 해보지 못하고 대학을 마치는 젊은 세대에 하루쯤의 자유를 허락할 수는 없을까.
졸업장만 받아 쥐면 당당한 사회인이고 직장인인 대학졸업생들이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한번쯤「호텔」에서 우아한 사은회를 갖기로서니 그다지 흠될게 무언가.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과 하룻밤쯤 2차, 3차 술집을 돌며「살풀이」를 했기로 그게 그리 잘못이 될까.
나는 현재도「커피」한잔 값을 아껴야하는 하숙생이다. 우리 과는 여러 급우들의 의견에 따라 불고기 집에서 단출하고 오붓한 사은회를 했다. 그러나「호텔」은 안 된다, 뭐는 안 된다는 식으로 일방적인 금기를 선언하는 것은 지나치게 소아적인 편견같다.
젊은이들을「기죽이는 사회」가 어떻게 젊은이들에게 기대를 걸 수 있을 것인가. 우리 모두 가슴을 좀 틔워야 할 것 같다. 제발 젊은이들에게 기를 좀 펴게 하라-.
▲57년 9월6일 강원도 강릉출생 ▲77년 여의도 고졸 ▲81년 2월 연세대 철학과 졸업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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