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화로 뿌리내리는 전통 민속극|탈춤의 해학 통해 현실을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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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덩-덩-덩더쿵! 덩기-덩기-딩더쿵-』장구·북·대 피리 등 삼현육각의 굿거리장단이 흥을 돋우고 팔자로 째진 입에 빨간 얼굴의 탈을 쓴 완보와 목승·상좌·옴중이 한데 어우러져 신바람 나게 어깨춤을 추어댄다.
『중이면 염불이나 하지 떵쿵하는 데가 당할 일이냐? /우리들은 중이라도 오입쟁이 중이다 /오입쟁이중이라도 염불은 해야한다-나무아미타불….』
장단이 4박자 타령조로 바뀌면서 깨끼춤·팔뚝잡이·곱사춤으로 홍은 고조된다. 고대 국문과 민속극 동호회-. 양주별산대놀이를 연습하는 20여명의 회원들에게 막 신명이 붙었다.
본판이 한참 무르익어 가는 20여명의「서클·룸」중앙의 유려한 몸놀림과는 대조적으로 한쪽 구석에는 신입회원들의 춤사위 기본동작을 익히는 몸 동작이 아무래도 어색한 채 반복된다.
깡충거리는 깨끼춤의 발놀림에 신경을 쓰면 팔놀이가 제멋대로고….
깨끼춤·깨끼리·빗사위 등 몸놀림이 어느 정도 가쁜하게 이어질 때면 가사·대사 외기로 들어간다. 이때가 여학생회원들이 가장 곤혹을 당할 때.
난삽하고 음탕한 대사가 과장 곳곳에 들어있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얼굴을 붉히고 외면해 버리면 남학생들은 더욱 가다듬은 목청으로 능청을 부리기 일쑤다.
장구·북·소고·속바지·속저고리·꽹과리 등이 방안 가득히 널려 있고 학생들은 서로의 몸짓·대사에『와아-』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양주별산대의 탈은 바가지로 만든 탈로 가격이 개당 1만원 정도로 너무 비싸 학생들은 공연할 때마다 기능보유자들로부터 빌어다 쓰곤 한다.
70년대 「초반부터 일기 시작한 탈춤 붐」이 그 동안 대학생들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이젠 하나의 대학문화로서 뿌리를 굳혀가고 있다. 탈춤을 추거나 연구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고「고성오광대」「가산오광대」「봉산탈춤」「강익탈춤」「양주산대」「송파산대」「하회별신굿」등 대상종목도 다양해졌다고 대학생들의 탈춤에 대한 높은 관심은 간신히 명맥만을 이어오던 전통민속극이 대학가에서 새롭게 계승되고 있다.
학생들은 우스꽝스러운 탈의모양, 흥겨운 장단과 춤사위를 통해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배운다.
특히 가장 밑바닥 억압받는 계층인 말뚝이·취바리가 등장, 양반과 중들의 바리를·폭로하고 그 횡포에 항거하고 당시 사회윤리를 비관하는 과정에서 배금주의·권위주의·권력만능이 팽배한 현실을 비판하는 기회도 아울러 갖게돼 더욱 탈춤에 애착을 느낀다.
학생들의 탈춤열기는 방학 중인데도 회원들끼리 모여 신학기 공연을 위한 현지 합숙훈련 전수자 초빙연습·외부강습을 실시하는 한편 현지자료수집, 연구발표회 등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73년부터 3년간에 걸쳐「가산오광대」를 발굴, 원형을 재현했던 서강대 민속 연구반은 지난해 여름 고성에서 10일간의 합숙훈련을 끝낸 것을 비롯, 올 겨울엔 선배들로부터「봉산탈춤」을 배우기로하고 1주에 두번 하루2∼3시간씩 연습을 하고있다.
고대와 숙대도 겨울방학 동안 회원20∼30명씩이 학교에 모여 연구발표·토론 등으로 탈춤을 연구하고 있다.
경희대의 경우는 서울지방에 전래돼온 송파산대놀이 극회를 조직, 매년 공연해 왔으며 연세대는 가면극 연극부가 매년 충무지방에 내려가 통영 오광대를 익혀왔고 이대는 양주 별산대를 위해 기능보유자들을 초청, 탈춤을 배워왔다.
이밖에도 지난달 초 성균관대에서의 1주일 여에 걸친 탈춤강습회에는 l백50여명이 혹한의 추위도 무릅쓰고 자리를 메웠으며, 9일부터 4일간 실시되고 있는 탈춤 전수원의 강령탈춤 강습회에도 40∼50명의 대학생 젊은 층들이 나와 강습을 받고있다.
한편 대학생들의 탈춤 원형재현과 함께 지난해 봄 서울대에서 공연한「관악굿」「녹두꽃」「노동의 횃불」과 이대의「지노귀굿」, 서강대의「젊음의 꽃」등 은 탈춤의 전통적 줄기를 유지하면서 이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했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연극으로서의 가능성까지도 보여준 값진 성과라고 전문가들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
고대 민속극회원 황의중군(28·국문과4년)은『탈춤은 시대와 민중 속에서 함께 호흡해온 민중의식의 표현』이라며『민속극 박물관의 전시품처럼 탈춤을 볼 것이 아니라 현 세대 민중의 소리로 재창조되고 추어져야한다』고 말한다. <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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