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사의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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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런 일화가 있다.「오끼나까」(충중중웅) 라는 일본의 내과명의가 동경대학을 정년퇴직할때의 얘기다.
제자들이 만당한 가운데 그는 마지막 강의를 하면서 자신의 연간평균 임상오진율은 14·2% 였다고 밝혔다. 물론 이것은 엄밀한 병리해부에서 분석된 결과였다.
「오끼나까」박사의 이 발언은 세문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우선 의사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과연 명의는…』하고 모두들 놀라움과 감탄을 감추지못했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의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설마「오끼나까」같은 명의가…』하고는 실망과 놀라움을 표시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오진의 문제는 의학세계에서 끊임없는 수수께끼와 시비를 낳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교사는 환자에 대해서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문제다.
그러나 의사도 인간의 한계를 갖고 있는 이상, 무한책임을 강요할 수는 없다. 시비는 바로여기에서 비롯된다.
의사들 자신은 시비의 한계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환자가 죽음의 고비에 이르렀을 때 과연 그 의사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느냐를 그 한계의 척도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진이냐 아니냐는 그 다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오진의 결과만을 유일한 평가의 기준으로 삼을수 없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오진은 물론 부가피한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 자신의 지식·경험·노력부족·증상의 분석·검토불충분·검사결과의 판단착오등에 의한 오진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과오나 착오는 그야말로 정상의 여지가 없지 않다.
문제는 현대의 의료기기들이 발전하면서 의사들 자신이「소프트웨어」보다는「하드웨어」를 중시하는 풍조에 있다. 의사는 어디까지나 「사」로서의 인간적인 능력(소프트웨어)을 발휘해야하며 생사의 문제를 차가운 기계(하드웨어)에만 의존할 수 없다. 의사는 병을 고치는기술자인 의「사」는 아닌 것이다.
인간은 한 생물로서의 「하드웨어」같은 존재이긴 하지만, 엄연히 인격을 갖춘 「소프트웨어」로서의 존재이기도 하다.
요즘 어느 여의사가 한 환자의 죽음에서 빚어진 시비를 견디지 못해 자살한 일이 있었다.의학상의 문제는 차치하고 우선 자살에 이른 그 심정엔 동정이 간다.
의사와 환자는 서로 의심하기보다는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어느 일방에게만 요구할 일은 아니고 서로가 인간적인 신뢰를 기초로 노력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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