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감사 관피아 막으니 정피아가 꿰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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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남부발전은 12일 임정덕 전 부산대 교수를 임기 2년의 상임감사로 임명했다. 임 감사는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캠프에서 정책개발본부장을 맡은 데 이어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는 새누리당 부산시장 후보 선대위 고문을 지냈다. “오랫동안 경제학 교수로서 식견과 경험을 쌓은 점을 높이 평가했다”(임원추천위원회)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정치권 경력을 감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 상임감사에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지낸 이영애씨가 선임됐다. 지난달엔 한전원자력연료 감사에 조은숙 전 한나라당 대전광역시당 여성위원장이, 한국거래소 감사에 권영상 전 한나라당 경남도당 부위원장이 각각 낙점됐다. 이달 들어서는 새누리당 대선캠프 재외선거대책위 공동위원장 출신의 방송인 자니 윤(본명 윤종승)씨가 한국관광공사 감사에 선임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료와 산하기관의 짬짜미 먹이사슬인 ‘관피아(관료 마피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면서 관료 출신의 공기업 진출이 봉쇄되자 여당 주변의 ‘정피아(정치인 마피아)’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3일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 5월 청와대의 관피아 척결 대책 발표 이후 새로 임명된 공기업 감사 5명이 모두 정치권 출신이다. 관료 출신의 공기업 재취업 길이 막히자 정치권 비전문가의 빈자리 파고들기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정피아 논란이 커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공기업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의 불투명한 구조에 있다. 지금 시스템에서는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결정이 어렵다. 임원추천위원(비상임이사·외부전문위원)을 모두 정부가 선발하기 때문이다. 최종 후보를 정할 때 정부의 재가를 받는 것도 문제다. 임추위가 3명의 후보를 올리면 정부가 1명을 탈락시킨 뒤 2명의 후보로 압축해 내려 보내는 식이다. 문종진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 시스템대로 가면 관피아가 정피아로 바뀔 뿐 낙하산 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임추위에 내부 직원을 참여시켜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 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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