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만 하는 어른들이 딱하기만 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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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낮에 가정집을 털고 달아나는 2인조 강도를 보고도 구경만 하는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15살의 중학생이 범인을 잡으려다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인웅교군(15·서울 광신중학교3년)은 강도를 놓치고 가슴을 칼에 찔려 병원에 입원했지만 대낮의 2인조 강도가 붙잡혔다는 소식에 상처의 아픔도 잊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1일 하오 2시쯤 서울 휘경동 183의218 심재순씨(36) 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휘경시장에서 채소상을 하는 심씨의 빈집에 과도와 「드라이버」를 든 2인조 강도가 들었다.
마침 가정부 주모양(19)은 시장에서 강사를 하는 심씨 부부에게 점심을 가져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범인들은 대문이 열린 빈집에 들어와 장롱을 뒤지다 귀가하는 주양과 마주쳤다.
범인들은 흉기로 주양을 위협하고 장롱을 뒤졌으나 금품이 나오지 않자 현금 1만여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들고 집을 빠져나갔다.
범인들이 심씨 집을 나가 다른 범행장소를 물색하던 중 주양의 연락을 받고 자전거를 타고 쫓아온 주인 심씨가 이들을 추격했다. 범인들과 심씨는 20여분 동안 휘경동 일대의 주택가 골목을 돌며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벌였다.
『강도 잡아라』고 외치며 뒤쫓는 심씨의 고함소리를 듣고 이웃주민 10여명이 쫓아 나왔으나 잡을 생각은 않고 구경만 하고있었다.
인군은 졸업시험을 마치고 평소보다 약간 일찍 귀가하던 길이었다.
학교에서 인군 집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
이날 치른 시험결과와 다음날 치를 시험과목을 생각하며 천천히 걷고 있는 인군 앞으로 청년 2명이 헐레벌떡거리며 달려왔다.
인군은 무심히 지나칠 뻔했으나 뒤에서 『강도야』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자 순간적으로 이들이 법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인군은 이들 범인을 잡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자 앞에서 달려오는 청년에게 달려들어 껴안아버렸다.
범인은 손에 들고뛰던 과도로 인군의 왼쪽 가슴을 찌르고 인군을 뿌리친 채 달아나 버렸다.
인군은 가슴에 흐르는 피를 막으며 『강도야』하고 연거푸 소리치다 길거리에 쓰러졌다. 뒤늦게 행인들의 도움으로 경희대 병원으로 옮겨진 인군은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심씨와 합세한 경찰의 추적을 받고 인근주택에 숨어 있다가 검거된 이규홍씨(21·주거부정)는 절도전과 4범.
또 다른 범인 유모군(19·서울 신월동)은 「택시」를 타고 달아나 서울 신월동 모다방에 숨어 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인군은 『쫓기는 범인을 보고도 입 앞에 나와 구경만 하는 어른들이 미워 보였다』며 『빨리 학교에 돌아가 졸업시험을 치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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