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무방비 지대의 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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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각종 화재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10월말 현재 전국에서 일어난 화재는 4천3백건으로 재산 피해 66억원에 인명 피해만해서 2백17명 사망에 부상 5백48명에 이르고 있다.
이런 숫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화재 건수당 사망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화재 발생건수에 있어서는 선진국에 비해 훨씬 적은 우리나라에서 화재 20건당 1명씩이 숨지는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것은 물론 부주의가 그 주원인이겠지만 방화설비의 지나친 빈약과 그에 대한당국의 점검 소홀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과 20분 동안의 불길에 5명의 종업원의 질식사 한 17일 새벽의 일식집 화재라든지, 지난 6월 광주의 지하「살롱」에서 무려 23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끔찍한 사고가 되풀이되어 얼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주변 환경이 화재에 대해 한마디로 무방비 상태라는 반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인구 밀집 지역의 방화시설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지금 상태대로 라면 조그마한 화재만 일어나도 순식간에 많은 사람의 목숨을 뺏는 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화재 취약지역 2만2천9백여개소 가운데 소방시설이 제대로 된 곳은 53%에 불과했고 나머지 1만1천1백62개소는 기준에 미달했거나 불량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 대상 건물은 주로 고층「빌딩」이나 시장 등 인구가 밀집한 지역이었지만 가정용 연료로서 유류나 도시「가스」의 보급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대형 화재의 발생소지는 한결 높아지고 있다. 또 최근의 통계를 보면 유류 사용의 부주의로 인한 화재발생이 누전 등 전기화재와 비슷하게 29%가량을 차지했는데 석유난로·전열기 등을 많이 사용하는 겨울철을 맞아 새삼 불의 무서움을 깨닫고 조심에 조심을 당부하는 소이인 것이다.
이번 일식집 화재사건에 또 한번 드러난 바와 같이 그중에서도 무서운 것은 변두리 맥주집 등이 화마의 사각지대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층「빌딩」이나 시장 등은 정기적인 소방시설 점검을 받고있는대 비해 유흥 음식점에 대한 소방시설은 형식적인 점검이나마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사망율이 특히 높은 술집 화재의 원인이 어디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려졌다. 소방기준을 무시한채 인화성이 강한「베니어」판 등으로 칸막이를 만들고 바닥에는「카피트」를 깔아 불이 나면 심한 유독성「가스」를 뿜어 순식간에 많은 희생자를 내고있는 것이다.
소방시설「제로」상태의 음식점은 거의 대부분이라 할 만큼 도처에 널려 있는데도 화재 사고가 적은 것은 그나마 요행이라고 여겨야할 것인지 소방당국은 깊이 생각해볼 일일 것이다.
다른 천재지변과는 달리 화재는 불가항력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날이 갈수록 대형화하는 화재사고를 막는 길은 소방법 위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
최근 당국이 각종 음식점에 대한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방시설 미비 등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허가를 완화하는 대신 사후관리를 잘 하도록 행정지도를 강화하고 위반 사항에 대한 적발과 단속도 철저히 해야만 한다. 화재 무방비지대에 대한 책임은 바로 당국이 져야한다는 사실을 새삼지적하면서 화재 예방을 의한 당국의 단속강화를 촉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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