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와 자연-한국시인 협회 주최 「세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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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연은 시 작품의 소재로 일차적인 것이고 그 때문에 동서의 많은 시인들은 자연을 가장 가깝고 손쉽게 노래해 왔다. 그런 자연이 현대시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어떻게 작용되는가. 한국시인협회(회장 정한모)가 18∼19일 속리산법주사에서 마련한 『현대시와 자연』이란 주제의 「세미나」는 그런 점에서 관심을 던져준다. 약 1백명의 시인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세미나」의 주제(발표자 이성교·허만하·박희진·이탄씨)를 통해 시에 있어서의 자연은 무엇이며, 오늘의 시는 자연과 어떻게 만나져야 하는 가를 살펴본다.
인간은 자연을 인식하는 데 두 가지 회로를 갖고 있다. 하나는 자연과학적인 방법인데, 이것은 이성으로 자연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감성적 또는 직관적 방법인데, 시인은 주로 이 방법을 통해 자연을 인지하며 그 인지된 대상에서 「이미지」의 자기증식을 더해 언어로 표현한다고 허만하씨는 말한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시인의 시선은 대개 아름다운 서정시로 변모되는데, 시인은 자연이 내뿜는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면서, 또 스스로가 창조한 새로운 세계를 자연을 향해 되돌려 주어야한다고 허씨는 강조한다.
이성교씨는 자연의 이해방법을 객관적 이해방법과 주관적 이해방법으로 나누었다. 객관적 이해방법은 자연을 앞에 놓고 밖에서 이해하는 방법이고 주관적 이해방법은 자연 그 속에 들어가 이해하는 방법이란 것이다.
한국 현대시 문학사에서 자연에 대한 자각은 1920년대 주요한·김소월에 의해 처음 이루어졌고 그 후 1930년대「시문학」파의 신석정·김동명·김상용과 같은 전원파 시인들로 이어졌으며 김영랑·노천명·서정주 등으로 발전되어 자연은 민족정서의 한 방편으로 한국시에 수용됐다.
결국 한국 현대시는 자연을 생활환경상 불가분의 한 요소로 받아들여 발전돼 왔다고 이씨는 결론짓고 있다.
자연을 수용하는 태도에 있어서 시인들은 자연을 단순한 한 개체로서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적요소로서, 모 인식의 새로운 세계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이탄씨는 이성구씨와는 달리 한국현대시에서의 자연수용을 30년대 말「자연파」라 불리는 박목월·조지훈·박두진으로 기점을 삼았다. 박목월의 경우 향토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조지훈은 선감각으로, 박두진은 선과 기독교적 혼용을 주제로 하고 있다고 이씨는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연은 이 세 시인에게서 『목마름』 (박목월), 『슬픔과 멋』 (박두진), 『영시대적 탐구와 당시대적인 대결』(박지훈)로 시적 변용을 보였다는 것이다.
자연 속에 주어진 인간존재가 자연을 바라보며 나누는 교감, 거기엔 동서의 차이는 없다고 박희진씨는 말한다.
다만 그 태도와 지향에 있어서 동양의 시인들이 자연을 안주의 귀의처로서 그와의 일치를 염원한데 반해 서양의 시인들은 보다 인간을 우위에 두고 자연을 인간의 영성적 자각에 이르기 위한 일종의 매개물로 보고 있다고 차이를 밝혔다.
그러나 막상 시작품에 있어서 이 차이는 크게 좁혀져 동서 자연시의 성향은 거의 비슷한 범위로 노래되고 있다고 했다. 결국 인간은 자연만으로도, 또는 문명만으로도 살수가 없어 양자의 새로운 조화가 이뤄져야한다고 박씨는 강조한다. 그래서 시인은 인간이 자연 안의 존재임을 자각하고 또 자기 안의 자연을 인식할 때, 그리하여 자연과의 일치를 실감할 때 가장 인간다운 품위를 얻게되는 훌륭한 시도 쓸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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