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936)|제70화 야구에 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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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49년 제4회 전국 중학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광주서중이 경남중에 펼친 일전은 승자나 패자나 멋진 한판승부였다.
경남중은 46년 제1회 전국 선수권대회이래 48년 제2회 전국 지구별 초청대회까지 3년에 걸쳐 본선 5개 대회에서 16승1패를 기록했으며 장태영이 「마운드」에 선 47년 이후로는 무패의 전승가도를 질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제4회 중학야구 선수권대회도 개막 전부터 경남중의 우승을 위한 들러리 대회라는 얘기들이었다.
9개 「팀」이 출전, 이범석 국무총리의 시구로 시작된 이 대회에서 경남중은 전주공업중을 13-1, 춘천농대부중을 10-0각각 5회 「콜드·게임」으로 물리치고 대구상업에는 2-1로 이겨 예상대로 결승에 올랐다. 반면 광주 서중은 부산중을 4-3, 대전사범을 4-1로 각각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광주서중이 이처럼 혜성과 같이 등장한 것은 좌완의「에이스」김양중의 어깨에 힘입었다.
똑같이「사우드·포」인 장태영과 김양중의 대결로 6월13일 벌어질 결승전을 앞두고 주최사인 자유신문사가 우승「팀」알아맞히기 현상응모를 했는데 광주서중이 이긴다는 엽서는 1천3백11통중 단8통뿐이었다.
심판진은 주심 손효준, 1루심 함룡화, 2루심 오윤환, 3루심 김영석 등이었으며 경남중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역시 일세를 풍미한 두 투수는 쾌속구로 상대방 타자들을 요리, 8회까지 0의 행렬을 계속하며 투수전을 전개했다.
경남중으로서는 의외의 고전이었고 광주서중으로서는 뜻밖의 선전이었다.
9회초 경남중의 공격은 맥없이「투·아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야구는 「투· 아웃」부터 라는 말이 있듯이 1번 허종만이 우전안타를 치고 나가더니 2루를 훔쳐「찬스」를 만들었다.
이어 2번 정상규는「풀·카운트」 까지 물고늘어지더니 통렬한 좌전안타를 터뜨리자 2루의 허종만이 필사적으로「홈」에 뛰어들어 「세이프」, 장내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그렇지만 운명의 9회 말이 기다리고 있을줄은 아무도 몰랐다. 9회 말 광주서중은 삼진과 내야 땅볼로 쉽게 「투· 아웃」 ,경남중의 3연패를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마지막 타자인 2번 이완재 역시 평범한 2루 앞 땅볼. 그러나 경남중 2루수 정상규는 쉽게 잡아내더니 1루에 약송구, 이완재는 2루까지 달려나갔다. 9회초 황금의 적시타를 터뜨린 정상규는 땅볼을 잡아 이제까지 하지 않던 「언더·드로」로 1루수에 송구했는데 이것이 악송구였던 것이다. 이렇게되자 자리를 일어나려던 8천 관중의 함성으로 열기를 뿜기 시작했다.
3번 김양중은 이때까지 3타석을 모두 삼진을 당했는데 「볼·카운트」1-1에서 깨끗한 중전 안타를 폭발, 이를 「홈」에 끌어들여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다.
연장 11회 말 광주서중은 선두 8번 김용욱이 이날 처음으로 장태영에게 사구를 고르자 심량섭 감독은 9번 문택영에게「번트」를 지시했는데 경남중 고광적 감독도 「번트」를 예상, 내야진에게 전진수비를 하라고 했다.
문택영은 초구에「번트」를 시도했는데 황급히 뛰어들던 3루수 조성일의 옆으로 빠져 외야로 흘러가 주자는 2루를 돌아 3루까지 달렸다. 그러자 당황한 경남중 좌익수 이상재가 또 3루「덕·아웃」으로 던져 숨막힌 결승전은 광주서중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이때 땅을 치고 우는 경남중 포수 송주창을 고감독이 붙들고 「덕· 아웃」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아마」사진사가 찍어 후에 『분패』 라는 제목으로 사진「콘테스트」에서 입상을 하기도 했다.
광주서중에 일격을 당한 경남중은 이해 부산국제신보사가 창설한 제1회 화랑기 쟁탈 전국중학대회와 제3회 지구별 초청전국중학대회에서 계속 우승함으로써 한을 풀었다.
이듬해 50년 6·25가 나던 해에 졸업한 김양중은 금융조합 연합회에 「스카우트」 되어 나와 함께「배터리」를 이뤘고 장태영은 서울상대에 진학했다.
만약 6·25전난의 비극이 없었다면 한국야구는 좀더 일찍 만개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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