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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공개법인가 은닉법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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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실련 정책실 관계자들은 "현재 정부의 정보공개체계에선 전문가 도움을 받지 않는 일반 시민이라면 절대로 주요 정책자료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행정기관을 상대하는 노하우가 있는 시민단체들이 청구해도 미묘한 자료의 경우 공개까지 1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경실련은 2000년 9월 국회에 국회의원들의 외유 활동과 관련된 8개항의 정보공개 청구서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국회 사무처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내용"이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이에 경실련은 법원에 정보공개 거부 취소소송을 냈고, 결국 2001년 6월 승소했다. 판결이 난 이후에도 국회는 갖가지 이유를 대며 공개를 거부하다 그해 말에야 자료를 내놓았다.

참여연대도 지난해 4월 국가정보원 현직 직원들로 구성된 상조회인 양우공제회가 5백억원 상당의 골프장을 매입한 것과 관련, 공제회 결산내역서를 공개해 달라고 국정원측에 제출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공제회가 비공개를 요청했다는 이유 등으로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국민의 알권리와 직결된 정보공개제도가 해당 부처의 비협조와 애매모호한 비공개 규정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행자부가 2001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인 정보공개법 개정안은 오히려 현행보다도 비공개 대상 정보를 더 확대하는 등 독소조항이 많아 학계와 시민단체가 집단 반발하고 나섰다.

경실련은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많은 학계 전문가.시민단체가 지적해 왔던 포괄적.추상적인 비공개 사유들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비공개 대상 정보가 확대.신설돼 정보공개거부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이날 올바른 정보공개법 개정을 촉구하는 행정학자 79명, 법학자 30명 등 1백9명 명의의 성명서를 국회 행자위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했다.

개정안은 ▶의사 결정의 중립성이 부당하게 손상될 우려가 있는 정보▶국민에게 혼란을 일으킬 상당한 우려가 있는 정보▶의사 결정에 참여한 당사자 또는 특정 이해관계인에게 중대한 손상을 주는 정보 등을 비공개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회견에 참석한 이종수(李鍾受.한성대)한국행정학회장은 "이런 신설 조항을 행정기관이 악용해 얼마든지 정보를 숨길 수 있게 했다"며 "이런 모호한 표현으로 규정된 비공개 정보 조항은 사실상 공공기관의 밀실행정을 보장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위헌의 소지마저 있다"고 비판했다.

李회장은 특히 개정안이 공공기관이 보유한 모든 정보의 목록이 아니라 공개 대상 정보의 목록만을 정보공개 창구에 비치하도록 해 기관이 처음부터 특정 정보들을 꼭꼭 감춰놓을 수 있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고계현(高桂鉉)정책실장은 "유명무실한 정보공개 제도 아래에선 브리핑제도 등 언론취재개편안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어렵고 오히려 언론의 취재 제한이란 비판만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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