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간의 「파트너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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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을 방문중인 미국의 저명한 시사평론가 「잭·앤더슨」씨는 미국정부가 김대중 사건 등 한국의 국내문제에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한다.
현대의 국제사회에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내정문제에 간섭해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이미 상식에 속하는 것이나 때가 때인 만큼 그 견해는 각별히 음미해 볼만하다 하겠다.
미국은 전후 일정기간을 통해 자유세계의 지도적인 국가로서 여타 우방들의 안보와 사회안정을 의해 일종의 후견인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특수한 원조­수원관계로 인해 미국은 자연 수원국의 외교·안보사항 뿐 아니라 내정과 체제문제에 대해서도 자국의 가치기준에 따라 제언도 하고 충고도 하는 관례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대다수 신생 독립국들이 점차 정치적으로 성숙해지고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부터 이러한 관계양식은 더 이상 적절한 것으로 통용되기가 어려워졌고 양자간의 관계는 1대1의 대등한「파트너십」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의 불가피한 대세였으며 또 바람직하고도 권장 할 만한 발전임에 틀림없는 것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동맹관계란 소련과 그 위성국들의 관계와 달리 수평적이고 호혜적이며 대등한 협력에 바탕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조야의 일부 인사들은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전 시대적인 감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간혹 느낄 수 있었다. 엄연한 주권국가인 협력상대방을 여전히 「클라이언트·스테이드」(피보호국)친하거나 그 나라에 대한 병력주둔을 마치 일방적인 특혜나 되는 것처럼 간주한다 든가, 또는 그 나라의 내정쟁항을 지극히 미국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하려드는 사례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한 습성은 과거 미국의 대외 강경론자들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흔히 비판되었으나 근년에 와서는 오히려 자유주의자나 진보적임을 자처하는 인사들에 의해 더 많이 답습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미국의 일부 진보­자유주의(radico­lieral) 인사들은 오늘날 개도국에서 대두되고 있는 자주안보 지향의 민족주의적 경향에 대해 심한 부정적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려는 듯하다.
그러나 실상 따지고 보면 이러한 경향은 미국의 전후「후진국정책」이 초래한 일부 결함 부분을 뒤늦게 보완하려는 일종의 자구적 보상행위임을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동맹국인 어느 한나라에서 어떤 특수한 사태나 자주적인 선택이 목격될 때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왜 미국적인 감각에 부합하지 않느냐고 묻기에 앞서 과거 미국의 「후진국정책」중 어디가 어떻게 잘못 됐길래 그와 같은 현상이 불가피 했는가를 근원적으로 자생해 보아야 옳은 것이다.
그래야만 미국은 점점 성숙해 가는 개도국들의 자주적인 지향과 어떻게 원활하게 제휴·협력할 수 있는가를 알게 될 것이고 이 지혜를 터득해야만 미국의 외교는 오늘날과 같은 혼선과 차질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건전하고 공고한 동맹외교의 성패는 상호존중에 달려 있다. 상대국의 특정한 정치사안에 이렇게든 저렇게든 개입하려는 것은 포함외교의 시대도 아닌 오늘의 국제관계에선 통용될 수 없는 것이며 성숙한 동맹관계의 발전에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분명한『외국과 외국사이의 대등한 협역관계』임을 새삼 환기한 「잭·앤더슨」씨의 상식론에 많은 미국인들의 공감이 따를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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