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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무턱대고 복지 … 국민들은 나라 거덜낸다고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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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광역·기초단체장, 시·도의회 의장, 시·도당위원장 등이 참석한 비상회의가 3일 국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박래학 서울시의회 의장, 권선택 대전시장, 박영선 원내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시종 충북지사. 새정치연합은 오늘(4일) 의원총회를 열어 비대위 구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김형수 기자]

결국은 ‘민생’과 ‘경제’다.

 여당만 민생을 챙기고, 경제 살리기를 말하란 법은 없다. 7·30 재·보선 참패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는 새정치민주연합도 결국은 민생·경제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나온다.

 “한국 야당·야권의 실패는 통치능력을 기르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최근 강연에서 한 말이다. 최 명예교수는 “지금 야권은 이상과 이념을 위해 정치 참여에 몰두하지만 대안세력이 되기 위한 능력은 기르지 않고 있다”며 “이는 한국 정당체제 전반의 실패, 민주정치의 실패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정권에 반대하는 것 외에 민생 분야에서 대안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17대 국회의 야당이던 한나라당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2004년 총선 이후 제1야당 한나라당과 현재의 새정치연합은 외형이 흡사하다. 2004년 17대 국회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확보했고, 한나라당은 125석(41.8%)이었다. 새정치연합은 4일 현재 130석(43.3%)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야당이면서도 ‘민생경제’를 앞세웠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자마자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진상 규명법안 ▶사립학교법 개정안 ▶언론개혁법안 등을 이른바 ‘4대 개혁입법’이라 규정하고, 이를 최우선과제로 추진하려다 역풍을 만났다. 여당·야당이 뒤바뀐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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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은 여당의 ‘정치성’을 공격하면서 실제로도 ‘뉴타운’ ‘자립형사립고’ 같은 실생활과 상관 있는 정책을 제시했다.

 부동산 재개발·재건축 활성화와 종합부동산세·거래세 완화, 서민 주택 공급 확대 등을 내세워 국민의 관심사를 선점했다.

 결국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다시 찾았고, 2008년 총선 때는 한나라당이 내세웠던 경제공약 중 하나인 ‘뉴타운’정책이 대세가 되면서 153석을 얻었다.

 뉴타운 바람이 불자 뒤늦게 비슷한 공약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유인태 의원은 18대 총선 패배 후 “(한나라당 공약을) 따라 하게 된 우리의 모습이 참담하고 부끄럽다”고 토로한 적도 있다.

 2014년의 상황도 그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새정치연합도 서울·충청남도 같은 격전지에서 승리하며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같은 차기 그룹을 배출한 상태다. 이들의 공통점이 바로 ‘정권 심판론’ 같은 정치이슈를 멀리하고 민생·경제를 앞세웠다는 것이다.

 특히 박 시장은 유연한 부동산 재개발·재건축정책으로 야권의 취약지인 서울 강남권에서도 지지가 높았다. 그럼에도 이번 7·30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은 달랐다. 오히려 과거로 되돌아갔고, 그 후폭풍은 컸다.

 3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논의하기 위한 광역기초단체장, 시·도당위원장 비상회의에서 안희정 지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 이후 13년간 (현 야권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혼란을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 지사는 “(야당 사람들은) ‘김대중 총재’ 같은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지만 그 시대는 안 돌아온다”며 “이제는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 가장 강조한 게 뭘까. 김 전 대통령이 후배 정치인들에게 당부한 원칙이 ‘서생(書生)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이를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계승하겠다고 표방하고 있는 지금 야당에 가장 부족한 게 바로 김 전 대통령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라는 지적이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복지는 그걸 뒷받침하는 경제적 기반이 함께 만들어져 가면서 해야 하는데, 그동안 야당은 (강경파들이) 그냥 무턱대고 복지를 한다고만 하니까 유권자들이 소위 ‘나라를 거덜 내는 코스’로 가는 거라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도 “최근 야당은 이념에 경도된 몇몇 강경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에게 믿을 만한 대안세력으로 각인되지 못했다”며 “강경대응과 민생정책을 유연하게 이끌어 갈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글=이지상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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