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칼럼] 1000억대 재산 벤처 신화의 몰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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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호 30면

A를 3년 여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뒤 연락이 끊겼던 그였다. 뜬금없이 걸려온 전화의 주인공이 A라고 믿기에는 말투가 너무나 어눌했다. 간병인의 도움없이는 ‘해석’이 어려웠다. 구치소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2년 반동안 치료를 받고 있었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병실에 있던 그는 오른쪽이 마비됐고, 언어능력도 절반 이상이 상실됐다고 한다.

1990년대 말 자본금 8억여원으로 만든 회사를 불과 3~4년만에 시가총액 3800억원대로 성장시킨 한국 벤처업계의 ‘신화’였던 모습은 흔적조차 없었다. 2002년 1100여억원의 개인 재산으로 ‘한국의 40대 미만 젊은 부호 10걸’에 포함되고,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와 ‘코스닥 황제주’ 자리를 놓고 자존심 대결을 벌였던 그였다.

-잘 나갈 때가 그립지 않나.
“솔직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건강했을 때가 그립다.”

-빨리 건강을 회복해 다시 일어서야지.
“절대 사업은 안할거다. 후회도 미련도 없다. 나에겐 너무나 큰 짐이었던 것 같다.”

-뭘 하고 싶나.
“행복해지고 싶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의 부침(浮沈)을 바라보는 제3자의 안타까움과는 달리 A는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수학 경시대회를 석권하며 과학고와 KAIST를 나온 젊은 수재 기업인에게 지난 1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돌이켜보면 그의 추락은 지나친 자신감과 돈에 대한 승부사적 기질의 집념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한때 그는 도박판에서 큰 돈을 벌었고, 이 때문에 조폭에게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각 언론매체들이 잇달아 자신의 성공담과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면서 그의 태도는 변해갔다. 땀에 젖은 양말이 발바닥에 붙은 상태로 밤을 세워가며 일하던 열정과 초심은 사라지고 있었다. 재산이 점점 불면서 크고 작은 M&A를 시도하는 등 자신의 전공과는 거리가 먼 금융전문가로의 변신을 꾀했다. ‘회사 인수→장부상 외형확대→매각→수백억 이득’이란 투기자본의 공식에 빠져든 것이다.

그러다 서울 시내의 한 특급호텔을 인수하기 위해 주식 담보 대출을 받은 것이 발목을 잡았다. 금융권의 반대매매를 막기 위해 대주주와 함께 회사 주가를 인위적으로 떠받친 것이 문제가 돼 수사를 받게 됐다. 주가 폭락과 함께 회사가 자금난에 빠지면서 또 다른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 부실기업으로 분류됐던 전자업체를 인수하겠다며 명동의 사채까지 동원했다. 회사 직원들과 동료들의 반대가 거셌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김대중 정부의 숨은 실세로 알려졌던 한 대기업 로비스트와는 합작투자를 명분으로 다른 기업 인수를 시도했다. 한 여성 무기 로비스트의 꾐에 빠져 무기중개업을 하겠다며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을 투자했다가 날리는 낭패를 보기도 했다. 결국 그는 ‘기업사냥꾼’으로 낙인찍혀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된다.

2011년 수사 와중에 만났던 그는 “돈을 버는 것이 승부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여겼고, 나 자신을 너무 믿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고 인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역시 돈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벌면 행복했고, 이 때문에 무리인줄 알면서도 욕심을 부리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미 뇌의 절반 이상이 손상돼 정상적인 사고가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구속되면서 자신이 한 말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지, 다시는 돈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벤처업계 풍운아의 추락을 보며 인간의 탐욕과 행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박재현 사회 에디터 abn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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